매일신문

[기고] 통섭(統攝)의 시대, 소통 행정은

지난해 10월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동양의 사상과 종교, 특히 선(禪) 불교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일구어 낸 '애플 신화'가 서양의 이성적인 사고와 더불어 동양적인 직관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그의 자서전에서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잡스가 첨단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시도했었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인수해 애니메이션영화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예술과 기술이 만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증명해 보였다. 스티브 잡스는 그야말로 21세기 대표적인 '통섭형 인간'이었던 셈이다.

사상과 사상을 넘나들고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낯선 것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조화를 이끌어 내는 것. 바로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통섭'(統攝)의 개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섭의 시대라 불릴 만큼 많은 것들이 뒤섞여 상호 공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서로 조화를 이뤄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통섭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방자치단체의 발걸음 또한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관(官)과 주민, 사업과 사업 간의 벽을 허물고 그 사이에 싱그러운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소통(疏通)의 행정이야말로 통섭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정 철학일 것이다.

경제개발만이 우선시되던 시기, 우리 사회는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짓는 등 물량 위주의 산업을 진행해 왔으며 그 사이 환경과 문화, 역사적인 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지자체들 또한 각 분야의 소통과 조화를 고려하는 대신 양적 성장만을 추구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 흐름이 바뀌고 경제, 산업, 문화, 예술 등 각 분야는 물론 여러 사업들 간의 소통과 조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대구 남구청도 통섭의 가치를 추구하는 여러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현재 남구청은 현충삼거리와 앞산빨래터공원 일대 1.5㎞ 구간을 조성하는 앞산 맛둘레길사업(이하 '맛둘레길')과 대구 중앙대로 중 영대네거리와 명덕네거리 사이 1.8㎞구간을 새롭게 바꾸는 문화'예술 생각대로사업(이하 '생각대로')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두 사업 모두 국가공모사업으로 각각 1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사업이 완료되는 2014, 2015년에는 대구의 풍경을 확연히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사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길을 닦고 거리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맛둘레길의 경우 녹색웰빙거리와 먹을거리 단지, 로하스벨트 구축과 함께 빨래터공원에는 자연학습체험장을 열고 앞산 일대에는 태조 왕건의 설화를 스토리텔링화하여 건강과 휴식, 여가와 문화, 체험과 교육의 효과를 한 곳에서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생각대로에서는 통섭의 가치가 더욱 확실히 구현된다. 1960년대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2'28 학생민주화운동의 발생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2'28 문화존(zone)을, 음악'미술'무용 등 예술 관련 학원과 연습실이 300여 곳 밀집해 있는 점을 기반으로 청소년 문화존을 조성한다. 여기에 예술인들을 위한 문화 공간 조성, 다문화가족과 함께 하는 나눔장터, 지역주민과 어우러진 축제가 더해진다.

각 분야와 사업 간의 벽을 허물고 턱을 낮추는 일과 더불어, 사업을 진행하는 구청과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거리 디자인을 주민과 함께 논의하는 '생각대로 디자인 학교'와 사업의 각 단계마다 실시한 '주민 공청회'는 그 좋은 예다.

획일화된 사고와 일방적 소통, 벽을 쌓고 경계를 세우는 것으로는 시대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진정한 의미의 자치 행정 또한 실현할 수 없다. 통섭의 시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며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여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일이 필요할 때이다. 그 일의 선두에 남구가 앞장서고 있다.

임병헌/대구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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