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안돼 보인다. 민심도 떠나고, 넘쳐나던 공신과 측근들도 등을 돌리고, 소속 정당에서조차 그림자 지우기에 열심이다. 정권 말기 대통령 주변 풍경이 늘 이렇다지만 '고향 사람(?)'이 보기에는 좀 그렇다.
이 정부가 실(失) 인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인사 실패와 계파 갈등이라는 두 가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국민들의 감점(減點)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시작됐다. 문제는 인사였다.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 파동이다. '강남의 부동산 부자'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요직에 발탁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들을 시작으로 현 정부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이 그랬다. 대통령 눈에 든 몇몇 사람들은 연이은 발탁에 '가문의 영광'이라며 희희낙락했겠지만,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사람을 쓰는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은 좌절하고 분노했다.
정치에서도 인사가 화근이었다. 정치판에서 인사의 완결판은 '공천'이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이 특히 문제가 됐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이 대통령과 반대편에 섰던 친박계는 철저하게 무시됐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써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비난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기세등등하던 친이계는 이제 뒤로 밀려났다. 혹시나 공천권을 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눈 밖에 나지나 않을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간판도 새누리당으로 바꿔달았다. 명실상부하게 '박근혜당'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새누리당'이 적어도 인사와 계파 문제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답답한 노릇이다. 대구경북은 이 대통령의 고향인 동시에 박 위원장이 태어난 곳이자 '절대 잊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의 첫 인사 대상은 비상대책위원들이었다. 그러나 밀실과 독선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비대위원들의 정치적 과거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면면을 보면 전 국민의 1%를 대변하는 특권 정당임을 입증했다는 비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양극화나 지방의 소외 문제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이들이 '서민'이나 '소외'를 이야기하면 공허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두 번째 작품인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인사 역시 평점이 낮았다. 그중 한 명은 하루 만에 낙마했다. 박 위원장의 표현대로라면 '촉새가 나불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다. '토를 달면 안 된다'는 한 마디에 잡음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토를 다는 것은 국민들 마음이고 기자들 자유지, 박 위원장이 그만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촉새'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 '토를 단다'는 표현도 지나치다.
비대위와 공천위에 이은 박 위원장의 세 번째 작품은 새누리당 총선 후보 공천이다. 앞의 두 사례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다.
4년이나 싸움질을 해댔지만 계파 갈등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박 위원장이 뽑은 비대위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현 정부 실세 용퇴론'이다. 말이 용퇴지 실제로는 '알아서 나가라'는 퇴출 통보다. 덧셈 정치가 필요한 시점인데 뺄셈 정치만 판을 쳐서 걱정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박 위원장 측이 인적 쇄신을 이야기하기에는 때가 좋지 않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당시는 이 대통령 5년 임기의 첫해 초입이었다. 2008년 총선 공천권은 대선 승리의 전리품 같았다.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오만했는지도 모른다.
반면 지금 박 위원장은 비상 상황이다. 그의 직함도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상, 비상이라고 해도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비대위원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구성원들이 조용한 것은 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런 침묵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이들을 승복시키거나 압도하지 못한다면 침묵이 깨어질 때는 더 큰 파열음이 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냥 시간만 지나면 그다음 수순은 야권이 새누리당보다 더 못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동관 정치부장 dkd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