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나는 모르는 일이라던 박 의장의 씁쓸한 사퇴

박희태 국회의장이 어제 의장직을 사퇴했다. 국회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사퇴문에서 박 의장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책임을 느끼며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의장의 뒤늦은 사퇴는 당당하지 않다. 자신의 전 보좌관이 검찰 조사에서 진실을 털어놓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의장직을 던진 것이다. 돈 봉투 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김효재 수석도 사의를 표명했다.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는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진실을 고백하는 이유를 밝혔다. '책임 있는 분'이 일면식도 없다는 거짓 해명을 하면서 사건을 키웠다는 말도 했다. 또 박 의장이 고 씨에게 (검찰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모두 국회의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란 분들이 아랫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자신들은 모르는 일로 뒷짐 지고 숨어 있었다는 말이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관련, 박 의장이나 김 수석은 과거부터 내려온 관행이라며 억울하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관행일지라도 돈 봉투 살포는 분명한 불법이다. 당연히 사건 초기 진실을 털어놓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랬다면 박 의장은 도망가듯 국회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모르는 일이라고 한 박 의장이 지금 와서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박 의장의 퇴진은 권력에 던지는 경고와 같다. 물러날 때도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또 진실을 감추려다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권력을 내놓기가 아깝더라도 국회의장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국민에게 곧 들통날 거짓말을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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