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 따라 승합차 탔다가…" SNS 괴담에 떠는 대학가

"원룸 구하려던 여학생, 병원서 장기 적출 당할 뻔"…10대 유포자

대학생 황모(21'여) 씨는 이달 초 대구시내 모 대학교 주변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친구와 길을 걷던 황 씨에게 한 할머니가 "방을 구하고 있느냐"며 말을 걸어왔다.

'원룸을 소개한다며 차에 태운 뒤 인신매매를 한다'는 평소 친구들 사이에 떠돌던 이야기를 들었던 황 씨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다 할머니 뒤에 흰색 승합차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미심쩍은 생각에 할머니의 손을 뿌리친 황 씨는 몇 시간 뒤 놀랍게도 똑같은 할머니와 승합차가 다른 여대생에게 접근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황 씨는 "괴담 때문에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범죄의 표적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대구 한 대학 주변에 '인신매매 괴담'이 확산되면서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근거 없는 괴담에 학생들은 온갖 대처법을 쏟아내고, 대학과 주변 상인들도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와 페이스북 등 SNS에는 대구에 인신매매가 성행한다는 글이 나돌고 있다. 대구시내 모 대학 인근에서 원룸을 구하려던 학생 3명이 방을 싸게 내놓겠다는 여성을 따라 차에 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를 마셨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도구가 가득한 병원 침대에 묶여 장기가 적출될 뻔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인신매매 경험담들도 장소만 달라질 뿐 내용은 비슷하다. 할머니가 짐을 들어달라거나 길을 가르쳐달라며 유인한 뒤 승합차에 태워 끌고 간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카더라'식 괴담은 장소만 바뀌어 재생산되고 있는 '헛소문'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실제 경남 창원과 전남 순천에서도 비슷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10대 5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괴담을 접한 학생들은 온갖 대처법을 쏟아내고 있다. 대학원생 윤현휘(25'여) 씨는 "밤늦게 학교에서 나오면 괜히 불안해서 큰길로만 다닌다"며 "괴담을 믿진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주차된 큰 차를 조심하라'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지 마라'는 식의 인신매매 대처법도 떠돌고 있다. 대학생 박진민(21'영남대) 씨는 "대구 전역에 인신매매단이 출몰한다는 얘기에 행인이 길을 물어도 '모른다'고 말하고 자리를 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괴담의 근원지로 지목된 대학은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해당 대학은 괴담의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로 학교 이름이 뜨자 해당 포털사이트에 연관검색어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검색시스템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2006년부터 블로그를 중심으로 꾸준히 괴담이 나돌고 있다"며 "누군가 고의적으로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괴담을 유포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대학 주변 원룸 임대업자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대개 원룸 임대 게시물을 본 학생들이 연락을 하면 차에 태워 데리고 오는데 최근 들어 아예 차를 타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임대업자 조모 씨는 "차에 타지 않으려는 학생에게 괴담의 장소와 임대할 원룸이 멀다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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