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돈과 권력

돈과 권력. 누구나 바라는 바로 싫어할 자 없다. 그러나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잘 쓰면 가진 자, 못 가진 자 모두에게 이롭고 좋다. 잘못 휘두르면 재앙으로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다. 동서고금의 많은 경험이 이를 증명했다. 식견 있는 이들이 늘 조심하고 경계했던 이유이다.

150여 년 전, 혼란과 도탄에 빠진 세상과 백성을 구하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일화도 재앙이 된 돈과 권력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울님(天主)이 말했다. "그릇된 세상을 건지고 도탄에 빠진 창생을 살리는 뜻을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금력과 권력이니라. 돈이 없으면 이 세상을 건지지 못할 것이요, 권력이 없으면 이 세상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 너에게 백의재상(白衣宰相)을 주어 천하를 다스리게 하리라."

수운이 대답했다. "이 세상은 돈과 권세로 망하게 되었거늘 이제 다시 부귀로써 세상을 건지라 하시니 사나운 것으로 사나운 것을 바꾸는 것이라 저는 이를 원치 않습니다." 한울님이 또 말했다. "권모술수로써 세상을 건지라." 수운은 거절했다. "이 세상은 권모(權謀)와 간교(奸巧)로 망하였는데 어찌 작은 꾀로써 백성을 속여 일시의 편안을 도모하겠습니다까." 한울님이 더 제안했다. "그럼 조화의 술법으로써 세상을 건지라." 그러자 수운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며 거부했다. 결국 수운이 택한 것은 돈, 권력 어느 것도 아닌 '하늘이 곧 사람'이란 평등사상과 사랑이었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위대한 선각자의 삶을 살았기에 역사에 남았다. 수운이 말한 '세상을 망하게 한' 돈과 권력은 뒷날 응징의 대상이 됐다. 동학혁명군이 '권세가와 귀족을 모두 없앤다'(盡滅權貴)며 4대 강령의 하나로 삼았던 것이다.

지금 돈과 권력이 빚어낸 재앙으로 홍역이다. 어제 사퇴한 박희태 국회의장이나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과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재앙의 주인공이 됐다. 공교롭게 이들은 닮은 점이 많다. 낙마 이유가 돈 때문이다. 모두 '몸을 세우고(立身), 이름을 날리며(揚名)' 권력의 정점 주변을 맴돌던 내로라하는 원로다. 또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고래희(古來稀)의 중후반 또래다. 떠나는 뒷모습이 너무 초라하다는 것까지 같다. 안타깝다. 차면 기울고 넘친다는데, 비우는 법을 몰랐을까.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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