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학교폭력 원흉… 동네북 게임

한때는 태극마크 달고 수출효자 각광…하루 아침에 찬밥 신세 '슬픈 자화

최근 게임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게임이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발표한 게임 규제안의 실효성과 적절성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게임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게임이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발표한 게임 규제안의 실효성과 적절성이 도마에 올랐다.

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즐기는 활동으로 저를 1순위로 꼽았습니다. 한때 저는 한국의 벤처 열풍을 이끄는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저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직업 선호도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0년 수출 15억달러를 달성한 저는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 했던가요. 지금 저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각광받는 인물에서 하루아침에 공적으로 변한 셈이죠. 이토록 슬픈 자화상을 가진 저는 게임입니다.

게임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정부 여러 부처에서 게임 규제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실효성과 적절성 여부가 도마위에 오른 것.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 규제안을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까지 게임 규제에 가세했다. 규제 이유도 다양하다.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중독 예방 차원에서 규제 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는 학교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게임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쯤 되면 게임업계가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게임 업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규제 실태를 짚어봤다.

◆셧다운제 2종 세트 시행 중

현재 게임 규제안으로 도입된 것은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 두 가지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을 제한하는 조치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 자정 이후 게임 접속을 할 수 없어 일명 '신데렐라법'으로 불린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온라인 통금, 위헌 소지 등의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시행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선택적 셧다운제'는 부모 등 친권자의 요청이 있을 때 게임업체는 18세 미만 게임 이용자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고 결제 내역과 이용 시간 등을 공개하도록 한 제도다. 게임산업 진흥 업무를 맡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과몰입 대책의 하나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령을 개정해 지난달 22일부터 '선택적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시스템 개편 등의 준비를 위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선택적 셧다운제'를 시행할 방침이었지만, 이달 1일 발표한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 대책을 통해 시행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산업 진흥 업무에 치우쳐 게임 중독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쿨링오프제까지 가세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도 게임 규제에 나섰다. 지난달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게임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일정 시간 게임을 하면 자동으로 게임이 꺼지는 '쿨링오프제' 도입 방안을 밝혔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힘을 실어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2일 청와대에서 가진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간담회에서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근절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게임 과몰입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게임을 학교 폭력의 근원으로 본 교육과학기술부와 뜻을 같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달 6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2시간 단위로 게임 접속을 자동 차단하는 '쿨링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게임물에 대한 청소년 유해성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게임물등급분류제도를 보완하는 한편 청소년 게임중독 치료 등을 위한 게임업계의 자금 출연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게임이 학교 폭력의 원인?

정부가 삼중 규제로 게임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게임업계뿐 아니라 게임 애호가들도 반발하고 있다. 특히 게임이 학교 폭력의 주범처럼 취급되어 규제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과 학자들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게임과 폭력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쿨링오프제' 도입이 결정되자 트위트에는 "게임이 폭력의 원인이면 아리랑치기는 민요가 원인이냐? 한마디로 코미디다. 셧다운제 이어 쿨링오프제까지 할 말 없게 만드는 정책이다" 등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정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미디어중독대응부장은 "인터넷 게임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학습하는 교실 노릇을 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할 수 있다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게임과 폭력의 직접적 상관관계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정재범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미디어 또는 게임을 접하면 장기적으로 폭력 성향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5분 정도 증가했다 평소 상태로 돌아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최관호 게임산업협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게임중독이 일부 원인으로 지적했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가해자 중 공부를 멀리하고 게임을 많이 하는 학생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게임 중독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억측이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능사?

게임 규제를 둘러싼 최근 논란의 핵심은 실효성이 의심되는 규제의 남발이다. '강제적 셧다운제'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정부가 각종 규제를 쏟아내자 규제 중독에 걸린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대 게임사가 제공하는 전체 이용가 등급 게임 6종의 심야시간(자정~오전 6시) 동시접속자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시행된 후 한 달 평균 4만1천796명으로 집계됐다.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전 4만3천744명에 비해 불과 4.5% 줄어든 수치다. 이는 입법 당시 기대 효과를 생각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강제적 셧다운제' 도입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학부모 등 성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게임에 접속하는 부작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9~18세 청소년의 19%, 3~9세 어린이의 10%가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는 게임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게임을 희생양 삼아 학교 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직장인 박성주(43) 씨는 "게임 규제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을 게임에 전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교 폭력 문제에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주체는 정부와 교육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모든 책임을 떠안은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학교 폭력의 근본 원인은 공교육 시스템의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와 교육계는 무너진 공교육 체계를 바로잡는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달 31일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정책실패를 덮기 위해 문화산업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며 정부의 게임 규제안을 비판했다.

게임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는 주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게임업계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 개발을 자제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 최훈석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는 "게임 이용 교육, 건전 게임 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하는 노력을 통해 건전한 게임 문화를 조성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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