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집열풍 와∼ 食道樂을 콕∼ "내 입은 절대미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단순히 입이 즐거운 행위를 떠나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주 5일제의 확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맛집 탐방을 취미로 삼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단순히 입이 즐거운 행위를 떠나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주 5일제의 확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맛집 탐방을 취미로 삼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입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겁다!"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부문이 먹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만으로 인간은 만족하지 않는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왕이면 다홍치마, 맛있고 눈까지 즐거운 음식들을 찾아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바야흐로 '맛집 열풍'이라고 할만 하다.

물론 과거에도 '맛'에 탐닉하는 이들은 있었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긴 하지만 소문난 '맛집'도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맛집 탐방'을 여가생활이나 취미생활로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의 확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의 맛집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문가 뺨치는 수준급 사진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사람들은 왜 맛에 빠져드는가?

◆맛을 즐기는 사람들

최모(50) 씨는 지인들 사이에 알아주는 미식가로 통한다. 차 없이 '뚜벅이' 생활을 고집하는 그는 골목길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며 그만의 맛집을 찾아내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혼자 들어가 맛을 보는 일이 쑥쓰럽지 않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그에게는 예민한 혀를 즐길 수 있는 기쁨의 순간이다. 그가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맛집 리스트'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재산. 식비가 너무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비싸고 고급스런 음식보다는 저렴하지만 깊은맛을 내는 음식을 주로 찾아다니기 때문에 밥값이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모(48) 씨는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맛에 탐닉하게 된 사례다. 기업 홍보실에서만 벌써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보니 점심, 저녁 시간 식사자리를 마련해야 할 경우가 많은 것. 그는 "늘 뭘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맛집 정보를 수집해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었다"며 "한식, 중식, 양식, 선술집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눠놓고, 그 안에서 다시 대표적인 메뉴를 분류해 그날그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해 놓으니 한결 수월해졌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44) 씨는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기피 인물이지만, 술자리를 싫어하는 비주류파에게는 가장 환영받는 상사로 꼽힌다. 식도락가를 자처하는 그와 회식을 하면 하룻밤 3, 4번은 자리를 옮길 각오를 해야 한다. 1차는 동동주에 해물찜, 2차는 고량주와 만두, 3차는 소주에 동태전 식으로 시간대별 맛집 투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서 직원 김모(39) 씨는 "배가 너무 불러 더는 못먹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술이 술을 먹는 회식자리가 아니라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식의 회식이어서 유쾌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동호회 등을 통해 맛집 기행을 다니는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연인끼리, 가족끼리 맛집 탐방을 여가생활의 하나로 즐기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동훈(28) 씨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맛집 투어를 시작했다. 한 광고에 등장하는 것처럼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 보는 패턴을 좀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맛집 투어를 하면서 카메라도 한 대 장만했다.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다 보니 좀 더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에 욕심이 났고, 이제는 음식사진 찍는 법까지 공부해가며 공들여 사진을 찍게 되면서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겨난 셈이다. 이 씨는 "가급적 도심보다는 외곽에 위치한 맛집들을 탐색해 음식도 먹고, 인근의 볼거리도 즐기는 방식으로 데이트코스를 잡고 있는데 여자친구도 적극적으로 함께 정보를 수집한다"고 했다.

◆넘쳐나는 맛집 정보

'맛'에 탐닉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미식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맛집 정보도 홍수를 이룬다. 몇 사람만 모여 앉으면 어떤 식당의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정보가 줄줄 나올 정도다. 인터넷에도, 방송과 신문에도 맛집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정보가 많아지면서 그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됐다. 특히 사람들은 이제 대중매체의 '맛집 소개'를 맹신하지 않는다. 은밀한 거래가 개입됐거나, 인맥이 닿았을거라는 '의혹'도 있지만, 그보다는 언론의 속성상 취재대상인 업체를 지목해 '맛이 없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한 방송 프로그램은 식사를 하고 나간 손님들의 투표를 통해 검증을 하는 방식까지 도입하는 등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인 김찬영(39) 씨는 대중매체의 맛집 정보를 불신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름 미식가를 자처하면서 많은 정보를 검색하지만 방송에 나온 맛집은 가급적 피하게 된다는 것. 김 씨는 "물론 유명하고 입소문이 난 집이겠지만 방송 직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주관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입맛은 제각각이어서 모든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입맛에 있어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절대미각'을 가진 이가 있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지난해 결혼한 아들과 한집에 사는 조현숙(51'여) 씨는 요즘 주말마다 아들 며느리를 앞세우고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간 맛집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조 씨는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줄까지 늘어서는 가게라도 감동이 없는 음식이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산을 하고 나온 경험도 꽤 된다"며 "맛있다 맛없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어서 내게 맞는 집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맛있는 집, 공통분모는 있다

제각각인 입맛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분명 사람들로 넘쳐나는 '맛집'은 존재한다. 직업상 출장이 잦은 손형진(48) 씨는 "낯선 동네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주차장에 차가 가장 많은 식당,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식당을 찾게 된다"고 했다.

김효진(27'여) 씨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집을 최고로 꼽는다. 해물탕을 끓이는데 며칠이 지나 비린내가 나는 해물을 쓴다면 제대로 된 시원한 맛을 낼 수 없고, 샐러드를 만드는데 풀이 죽고 거무스름한 갈변(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진행되는 야채를 사용한다면 아삭거리는 식감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최상의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본다"며 "나름 입소문 난 가게라 할지라도 재료가 시원찮으면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일식, 중식, 양식, 인도, 태국요리 등 다양한 국적의 음식문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한국인들은 아무래도 토속적인 우리의 맛에 깊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나, 칼국수, 매콤한 닭볶음탕 등은 누구나 입에 군침을 고이게 하는 음식들이다. 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이모(48) 씨의 경우에는 아예 칼국수 맛집 리스트만을 따로 모아놓을 정도로 칼국수 마니아다. 그는 "어떤 육수를 사용하고 어떤 재료를 사용해 면을 뽑았는가에 따라 같은 칼국수라도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묘미가 있는 것이 우리 음식의 매력"이라고 했다.

또 하나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카테고리는 몸에 좋은 웰빙 식단이다. 뽕잎이나 메밀 등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첨가했다든가, 들깨칡칼국수, 홍삼밥, 전복삼계탕 등 건강에 좋은 재료들이 듬뿍 들어간 음식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유혹하는 것. 이진성(32 )씨는 "늘 먹던 음식이라 할지라도 이색 재료가 가미되면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맛집 카페 등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존의 음식을 응용한 색다른 메뉴들도 꽤 눈에 띈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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