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를 통해 다녀왔던 백두산 기행. 마지막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옆좌석에 앉아 있던 형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나 내일 또 비행기 타고 독일로 간다." 알고 보니 교환학생으로 바로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우리 학교에도 그런 것이 있었군요"라는 반가움과 함께 교환학생 도전이라는 실천 과제를 얻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를 하나하나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교환학생 신청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이번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마감 직전 헐레벌떡 뛰어가서 아슬아슬하게 접수를 마쳤습니다.
경상 계열의 학생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마음껏 지원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과의 경우 영'미권을 제외하고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폴란드, 헝가리, 리투아니아밖에 없었습니다. 리투아니아? 처음 들어보는 국가 이름이었습니다. 생소한 마음에 다시 인터넷을 통해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니 역시나 자료가 아주 적었습니다.
발트 3국 중 한 나라. 구 소련(러시아)으로부터 독립한 지 반세기를 조금 넘은 나라. 유럽 내에서는 교통사고율 1위를 달리고 자살률도 유럽에서 단연 1위(한국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음)인 나라, 산스크리트어 고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리투아니아 언어가 남아 있는 나라, 유럽 내에서 소수자에 대한 인권적 보장이 가장 열악한 나라, 유럽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온 나라, 숲과 호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라 등등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정보를 보면 볼수록 뭔가 모험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라가 리투아니아일 것이라는 예감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1지망도, 2지망도 리투아니아로 정하고 면접에 응했습니다. 결과는 운이 좋게도 합격!
그런데 지인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리투아니아? 그 나라 있기는 한 거야? 사기당한 거 아냐? 아프리카야? 남미야?" 등등. 부모님도 "아니 너는 왜 늘 선진국은 가지 않고 듣도 보도 못한 가난한 나라만 가느냐"고 만류하셨습니다. "역시 너답다" "살아서 돌아와" 등 별로 듣기 좋지 않은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뭔가 흥미로울 것이라는 강한 예감만은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잡고 다시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대구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을 거쳐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도착한 핀란드 공항에서 대기하다 다시 리투아니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기까지 25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을 파김치로 만드는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악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나라 버스터미널 크기의 공항. '역시 작은 나라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외국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대량으로 가져갔던 열쇠고리가 공항 검색대에서 발견되면서 다른 승객들은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공항에서 한참을 검색대 직원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잘 못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직원은 영어를 전혀 못했습니다.
30여 분이 흐르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선물을 모조리 빼앗기고 입국하겠구나 싶던 차에 본인도 지쳤는지 아니면 너무 절박한 표정을 보고 그랬는지 '그냥 나가라'고 손짓으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입국 수속을 밟고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나와 보니 텅 비어 있던 공항, 누가 봐도 딱 알아볼 수 있게 공항 한가운데 저를 도와줄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에게 일대일로 현지 대학생 친구가 도움을 주는 멘토 시스템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대학이 도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메일로 인사만 나누었지 처음 보는 친구임에도 보자마자 깊은 안도감에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콜택시를 부르고 가져온 상자와 짐을 싣고 기숙사로 떠나는 길. 친구의 첫 설명은 이랬습니다. 여기는 위도가 높아 겨울 동안은 해가 짧은 편이어서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눈도 자주 오는 편이라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 살아온 저에겐 최악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환하게 웃으면서 얘기를 해주더군요. 그 전해 1월에는 영하 20∼30℃까지 떨어졌었는데 이번 달은 그나마 영하 10도 수준으로 올랐다고 말입니다. 순간 다가오는 정적과 멍해지는 순간. '진짜 고생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간의 리투아니아 생활은 시작됐습니다.
박성익/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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