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석이가 배시시 웃으며 초콜릿 하나를 내손에 쥐여주고 도망간다. 와이셔츠 모양의 핑크색 포장지에 초콜릿 하나가 수줍게 들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입에 넣으니 초콜릿 향기가 배는 것 같다.
선물이란 '나'가 아닌 '너'를 향한 마음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따스하게 한다. 나에게도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주신 결코 잊지 못할 선물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마음의 선물….
'새 국어 선생님은 누구실까? 착한 분이면 좋겠다' 생각하며 2학년 첫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데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나는 기절할 뻔했다. 남자 선생님인데다 우리 집 피아노 위의 호랑이 인형과 닮은 무서운 얼굴, 마치 마이크를 달아 놓은 듯한 큰 목소리는 나의 기대를 팍팍 죽였다.
그러나 며칠 뒤 내 생각은 완전 바뀌었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많은 5교시 수업시간에 갑자기 덩치 큰 친구 한 명을 골라 팔씨름을 하자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아이들은 "선생님 이겨라! 선생님 이겨라!"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선생님께서는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일부러 지셨다. 체육시간 바로 다음 수업시간이면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에 대한 처방은 뼈다귀를 물은 강아지처럼 입에 면봉을 물게 하는 것이었다. 자상하고 유머감각 있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참 많이 따랐다.
첫 수업시간에 1년 동안 손바닥을 한 번도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기로 약속하셨는데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내가 남았다. 나는 잔뜩 기대를 했지만 마지막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선물을 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봄 방학식 날,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교무실로 달려갔더니 "넌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언어의 마술사가 꼭 될 수 있을 거야" 하시며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집 한 권과 초콜릿을 선물로 주셨다. 등을 토닥여 주시는 선생님에게서 나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함께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선물은 힘들 때마다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작년 밸런타인데이에 '사랑해요'라는 휴대폰 문자를 모르는 번호로부터 받았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나를 사랑한다니 고마워요'라는 답장을 보냈다. 다시 답장이 와서 깜짝 놀라 들여다보니 오래 전 가르쳤던 아이였다.
나는 그 문자를 지우지 않고 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성인이 된 그 녀석들을 불러서 정겨운 추억의 꽃을 피워보아야겠다. 그 옛날 우리 선생님처럼 지혜와 용기란 선물을 준비해서 말이다. 아마도 그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는 또 하나의 선물이 되어 나를 이끌어 주리라 나는 확신한다.
준석이가 준 초콜릿이 아직도 입 안에 남아 달콤하다.
황인숙(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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