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닭 한 마리 푹 삶던 날

새벽부터 닭 껍질 벗기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껍질과 근육 사이에 붙어 있는 기름을 떼어내고, 꽁지와 날개를 부엌가위로 싹둑 잘랐다. 특히 닭 꽁지는 보기만 해도 혈관에 두텁게 쌓일 것 같은 포화지방 덩어리가 똘똘 뭉쳐져 있다. 껍질과 지방이 홀라당 벗겨진 닭은 곰탕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향긋한 당귀와 대추를 넣고 양파, 당근, 무를 큼직하게 토막 내 넣었다. 마늘과 인삼이 들어가야 제 맛인데 오늘은 생략했다. 혹시 아픈 엄마가 드시고 속이 불편할까봐서다. 찹쌀과 껍질 깐 노란 녹두도 불려 놓았다.

삼계탕이나 치킨 수프는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닭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기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좋다. 닭 키우는 과정이 예전과 달라 먹고 말고의 논쟁이 있지만 나는 먹는다. 조리법을 살짝 바꾸면 박수받을 만한 요리 재료이다.

닭 한 마리를 한 시간 반가량 푹 고았다. 닭도 잘 삶겼고, 같이 넣은 야채도 푹 물러서 흐물흐물해졌다. 닭은 따로 건져내어 식혔다. 야채와 한약재도 건져내고 닭을 곤 물에 불려둔 찹쌀과 녹두를 넣었다. 찹쌀이 적당히 퍼지면 곱게 살을 발라 낸 닭살을 넣고 한번 부르르 끓으면 완성이다. 그때 천일염도 적당히 넣어주면 구수한 맛이 한결 깊어진다.

작년 이맘때 엄마는 폐암에 걸렸다. 그때가 벌써 4기(다른 장기에 전이된 상태)였으므로 이제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현대 의학 덕분이다. 진단받았을 때부터 내가 있는 병동에 머지않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딸이기는 하지만, 엄마의 보호자는 아니었다. 지금은 '딸 바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딸들의 전성시대지만, 예전엔 아니었다.

엄마의 세 딸은 엄마의 아들을 위해 존재했다. 남동생은 유치(乳齒)에 충치가 생기면 금으로 덮어 주었지만, 여자들은 아파도 병원 한번 데려가지 않았다. 시집가는 딸 복을 가져간다며 딸이 입던 속옷도 결혼할 때 보내주지 않았던 엄마였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누구보다 이해한다. 그 시대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최고조였고, 내가 엄마였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남동생에게 엄마를 맡겨 두었다가는 너무 많이 아플 것 같아서 우리 병동으로 입원시켰다. 암은 지난 1월부터 머리부터 허벅지다리뼈까지 전이됐다. 내게도 한바탕 감정의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이제는 옆에 온 엄마가 사랑스럽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나를 보고 한 첫 말씀이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드릴 닭 한 마리 푹 고면서 눈물을 흘린다. 엄마 인생이 떠올랐다. 먼 훗날 내 딸도 이런 순간이 있을 것이고, 내 딸의 딸도 이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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