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에 살았던 '가와쿠들'이란 인디언들은 돈이 쪼들리면 전당포에 가서 자기 이름을 잡히고 돈을 빌렸다고 한다. 이름을 전당포에 잡혀놨으니 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이름 없는 몸뚱이로만 돌아다녔다는 거다. 전당포 주인이 좋은 이름은 비싼 값에 잡혀주고 나쁜 이름은 싼값에 잡혀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름은 좋은 게 좋다는 게 통념이다. 로마인들도 이왕이면 이름이 좋은 청년부터 전쟁터에 내보냈으며 시저는 부하 장교들을 발탁할 때 이름 좋은 장병을 골랐다는데, 스키피오라는 장군도 이름이 시저의 마음에 들어 졸병 때 일약 지휘관 자리에 앉혀졌다는 설이 있다.
이름의 상징성을 너무 신비화하면 소위 좋은 이름이 운이 좋다는 '이름의 미신'이 생겨난다고 했다. 성명철학가들이 이름에다 특별한 의미를 두고 좋은 이름이 좋은 운세를 가져온다고 말하는 거나 할아버지가 손자 이름 짓는 값을 아끼지 않는 심리가 그런 맥락이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고 지어놓아도 불러주는 사람들이 좋게 불러주면 좋은 이름값을 하지만 삐딱한 심사로 꼬아 부르면 운세 좋은 이름도 희화화된다는 점이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이름이 그런 예다. 레닌이 막심 고리키 부부를 초대한 파티에서 아름답고 정숙한 고리키의 부인(스라도카야)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막심 고리키(러시아어로 '몹시 고통스런' 맛)인데 자네 부인은 대단히 스라도카야(달콤한 맛)로군.'
레닌의 우스개는 그나마 웃자고 한 호의적인 이름 풀이지만 새누리당으로 바꾼 한나라당의 이름 바꾸기와 색깔 바꾸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름뿐만 아니라 새로 바꾼 로고(Logo)에 왜 붉은색을 넣었느냐는 트집에다 비데니 목욕탕 깔개 의자 같다느니 시비한다.
나꼼수 지지자들의 입방아야 그렇다 치고 자기네 당 내부에서까지 시비해 대는 건 볼썽사납다. 그들이 스티브 잡스의 애플 회사 사과 모양 로고를 보고는 왜 '썩어서 베어낸 사과 같다'고 시비 안 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새누리당 로고 제작자를 편들자는 게 아니라 정당 이름 바꾸는 일 하나까지도 국론이 분열되고 적대적 반감과 악의적 조롱들이 판치는 망국적 세태와 그런 언어 조폭들의 해악을 말하자는 거다.
현시점에서 새삼스레 빨간색 파란색 논란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불법 파업장의 붉은 머리띠에서 이미 빨간색은 무감각한 면역과 내성을 키워 낸 지 오래다. 입초사에 눌려 다시 파란색을 끼워 넣은 소심한 반응은 겁쟁이란 조롱만 하나 더 보탤 뿐이다. 어차피 가랑비에 옷 젖듯 하나하나 여기저기 물들어 가는 거라면 차라리 빨간색을 보수여당의 깃발 속에 그려 넣고 치고 들어가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좌파나 종북 세력이 지녔던 색깔의 상징성과 '컬러 파워'를 희석시키는 효과도 있을 테니까….
이번 새누리당의 당 이름 바꾸기와 로고의 색깔론 시비 속에서 위기의 여당이 새겨야 할 것이 있다. 당 이름에 '새'자만 넣으면 저절로 새로 태어나는 게 아니란 거다. 낡은 당을 쇄신하겠다면 지어준 이름 겸허히 받아들고 새 이름이 뜻하는 정신을 따르고 새기겠다는 각오부터 다졌어야 했다. 그게 새롭게 혁신하겠다는 당의 자세다. 그런데도 당을 망쳐놓은 자들이 국민과 전문팀이 지어준 이름에 이런저런 딴죽 걸며 의원총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설쳤다. 당 망친 '새머리'들이 모여 새 당 이름을 재심사한다? 그러면서 뒤로는 야당과 한통속이 돼 부실저축은행 피해 손실을 국민 돈으로 메워 주는 악법이나 만들어? 그러니 누리꾼들의 온갖 조롱과 비꼬기가 쏟아지고 언론은 악법 발의 의원 24명(대구엔 배영식 의원)의 얼굴까지 실어가며 유권자 심판을 암시하는 거다.
그렇다면 당 이름을 바꾸면서 새겨야 할 각오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고사(故事)에서 답을 찾아보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국호를 명(明)으로 정할 때 공신들이 해(日)가 나오고 나면 뒤이어 또 달(月)이 나오니 두고두고 나라가 번성할 것이라고 아첨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라와 황제의 위엄은 청렴으로 민심을 얻는 데서 나온다. 황제의 위엄은 민심이 만들어주는 것이고 민심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바른 정치에서 얻어진다.'
그 말뜻을 아는 정치만 해줄 수 있다면 새누리면 어떻고 새머리면 어떤가.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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