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부쩍 아이들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아이들 돌보는 일을 일 년 중 어느 한 시기도 소홀히 할 수 있겠느냐마는 요즘은 아무래도 졸업식이니 신학기니 해서 부모로서 챙겨야 할 게 많은 시기이기도 하니 유독 더한 것 같다.
부모 자식 간은 분명 다른 사회 환경과 다른 세대를 살아왔기에 아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맞는 특별한 방법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험난하고 세찬 바람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따뜻한 가슴을 느낄 기회를 한없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줄 알고, 힘들고 슬픈 일에는 슬퍼할 줄 알고 부당한 일에는 분노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의 계발이 필요하다고 하는 요즘, 아이들이 사춘기가 지나고 성장해갈수록 부모와의 사이가 서먹해지고 일상적인 대화마저 점점 줄고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발생하는 가족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 자식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어떻게 가는 길이 좀 더 인생을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인지 함께 고민을 들어주는 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임이 분명하다.
몇 해 전 아이와 교환일기라는 걸 쓰기 시작했었다. 일하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놓치지 않고 아이와 소통을 해보려 노력했다. 아이와 교환일기라는 대화창을 통해 우리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생긴 것이다.
누구나 비밀의 공유는 상대와의 강력한 유대감을 불러온다고 하지 않는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대에게 내면의 일부를 솔직히 공개하는 것은 진실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환일기장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부탁이나 요구 사항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 자기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기 기분이 어떤지를 이야기하고 부모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둘만의 대화였기에 지금의 엄마 마음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 속상하다고, 어른들이 보기엔 너무 사소한 일에만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은 네 모습에 정말 걱정스럽다고. 너무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말이다.
아이도 속마음을 바로 전해왔다. 자신의 방황기는 끝났으며 사소해 보이지만 자기에게는 중요한 일상이었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스스로 방황기가 끝났다고 하니 걱정스럽던 마음도 한순간에 사라지며 아이의 얼굴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방황하는 날들이 있을 것인지 잘 알지만 부모로서 지켜볼 뿐이다.
교환일기는 분명 서로에 대한 일상적 대화나 고민 이외에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 글자체가 비슷하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대화하기 전 마음을 여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세상 사는 게 즐겁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시련도 실패도 견딜 수 있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교환일기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와 맘껏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충분히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해 주는 귀중한 경험의 도구가 될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모른다. 어느 부모든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하겠지만 마음과는 달리 사소한 일로 꾸짖다가 갈등이 깊어질 때가 많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용서할 수 없다 싶어도, 미워 죽겠어도, 나와 의견이 달라 이해가 안 될 때도 잠시 3초만 기다리자. 어차피 둘만이 공유하는 일기장에다 부모의 입장을 충분히 쓸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쓸 시간쯤이면 바로 나오려던 강한 말투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고, 내 아이의 마음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부모의 입장이 아닌 자식의 입장이 한번 돼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이와의 다툼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가 되더라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연습도 시킬 겸 내 아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함께 공감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교환일기를 한번 써보면 분명 내가 몰랐던 내 아이를 발견할 것이다.
오늘도 노란색 스프링 노트는 필자의 붙박이장 속으로 옮겨와 지친 삶도 위로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줄 것이다.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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