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잠비아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축구 대회에서 예기치 못한 우승으로 들떠 있을 때에 우리나라 프로배구 선수 몇 명은 승부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스포츠의 감동과 추함이 지구 반대편에서 동시에 일어난 그 순간은 스포츠의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양 극단을 차지하는 상징적 사건들로 채워졌다. 이처럼 어긋난 현실은 스포츠의 순수와 타락을 되돌아보게 한다.
잠비아는 19년 전 축구대표팀 전원이 가봉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숨진 아픔을 안고 있었다. 잠비아 축구대표팀은 비극이 일어난 바로 그 국가, 가봉에서 열린 네이션스컵 대회에 참가하며 선배들의 슬픈 영혼을 달래줄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무명의 선수들이 대부분인 잠비아가 우승하리라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잠비아는 이런 예상을 비웃고 결승까지 올라가 디디에 드로그바, 제르비뉴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부아르를 승부차기 끝에 눌렀다. 우승한 잠비아 선수들은 선배들의 영전에 고귀한 우승컵을 바쳤다.
아프리카에서 햇살이 비칠 때 우리나라의 일부 배구 선수들은 음습한 과거에 발목이 잡혔다. 불법도박사이트와 관련된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 일부러 느슨한 경기를 펼쳐 경기를 내주고 검은돈을 챙겼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잘못으로 말미암아 신인왕 출신의 전도유망한 선수와 재능이 풍부한 중견 선수 등이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프로배구가 한때 시들했다가 다시 인기를 얻는 때에 팬들의 사랑을 받던 이들은 불명예를 안고 코트를 떠나게 됐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승부와 치열한 경쟁이 빚어내는 순수성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경기는 차분하게 시작했다가 뜨거워지며 일방적이거나 옥신각신하면서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선수와 팬들은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아파하며 축하를 보내고 위로받는다. 오늘은 환호하지만, 내일은 분을 삭이거나 슬퍼하면서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이처럼 스포츠에는 인간사와 같은 희로애락의 파노라마가 응축돼 있으며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고달픈 삶을 잠시 쉬어간다.
그러나 멸시와 증오, 탐욕과 부패의 그늘도 경기장 안팎에 드리워 있다. 영국의 축구 클럽 리버풀의 백인 선수 루이스 수아레즈는 경기장 안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흑인 선수 파트리스 에브라를 향해 '니그로'라고 내뱉음으로써 오점을 남겼다. 인종차별을 금기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오래전부터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후안 아벨란제 전 회장과 그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조셉 블래터 현 회장 체제에 이르기까지 FIFA의 재정은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도 김진국 전무가 비리 직원을 모호하게 처리하면서 사퇴했고 조중연 회장은 미숙하면서도 독단적인 행정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래도 이런 오점들은 승부 조작에 비하면 작은 때에 불과하다. 승부 조작은 스포츠의 존재 의미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다양한 불법 형태 중에서도 결코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가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두면서 승부 조작의 어두운 그늘은 더욱 짙어가고 있다. 수년 전 이탈리아 프로축구에서 승부 조작 추문이 터졌고 세르비아 등 동유럽 축구계는 승부 조작이 폭력조직과 연루됐다는 시선을 받았다. 1919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블랙삭스 추문'의 교훈은 오늘날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프로축구의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지고 나서 프로배구와 프로야구로 번지고 있다. 국내 4대 프로 스포츠가 승부 조작에 휘말리는 현실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승부 조작 근절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고 해결책을 찾아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선수들을 승부에 내몰면서 건전한 교양을 갖출 기회를 앗아가는 스포츠계의 현실을 혁파해야 한다. 불법도박사이트를 단속하고 자정 결의대회를 여는 것보다 어둠의 근원을 찾는 인식이 중요하다. 오염된 강을 1급수로 개선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타락하고 있는 스포츠에 순수의 숨결을 불어넣으려면 심연을 향한 힘든 항해에 나서야 한다.
金知奭/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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