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열풍이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아지면 도심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도 기대된다. 아마 19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70년대는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지금은 어디에서나 흔하다는 점이다.
'세시봉'에서 알 수 있듯이 통기타 음악(포크)은 다운타운이 마련한 자본과 공간에서 대학생들의 콘텐츠가 만난 형태다. 여기서 대학생이라는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것인데 특유의 은유와 비판을 노래에 담아 불렀다는 점에서 이 전 시대의 노래와 구분된다. 특히 1968년 '한대수'가 남산드라마센터에서 공연을 가진 후 모던포크로 불리는 참여적인 성향의 노래는 통기타 음악의 보편적 어법이 된다. 이 가운데 서유석은 가장 모던 포크 정신에 어울리는 노래를 부른다.
서유석은 반골 기질이 뚜렷한 포크 가수였다. 데뷔 때부터 '파란 많은 세상', '세상은 요지경'처럼 대학가의 세태를 꼬집는 노래를 부르더니 대학 초청 공연에서는 아예 노래는 부르지 않고 대학생들에게 훈계만 늘어놓기도 했다. 애초 무기력한 청년층에 대한 쓴소리를 노래에 담더니 김민기 등이 활동하던 서울 YWCA 노래모임 '청개구리'에 합류하면서 당시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도 부른다. 당연히 미운털이 박혔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점점 높아갔다. 그러던 1969년, 구봉서의 주선으로 방송계에 입문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당대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반골 기질은 잘나가던 서유석의 발목을 잡는다. 라디오 프로그램 생방송 중에 UPI 종군기자가 쓴 '어글리 어메리칸'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베트남전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침 당시는 한국군의 참전을 종용하기 위해 미 국무장관이 방한해 있던 때여서 문제는 일파만파 퍼졌고 생방송 중에 도망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결국 활동 금지 조치를 받고 양복점을 열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아서 결국 서울을 떠나게 된다. 대전으로 내려 간 서유석은 나대지 가건물에 생맥주집 '아리'를 열고 틈틈이 무대에서 노래를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대전에서는 통기타 붐이 일게 되는데 이후 신승훈 같은 가수가 나오게 되는 기반을 만들기도 한다.
대마초 파동으로 많은 가수들이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정부에서는 서유석에게 노래할 것을 강요한다. 다시 노래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지인들을 통한 회유가 계속되었고 결국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회환을 담은 '가는 세월'을 발표한다. 이 곡을 두고 서유석의 변절을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노래할 수 없었던 가수에게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하면 아련하게만 들린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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