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이/ 저만치/ 텅 비어 있는 채 서 있다/ 그 비어 있는 마음으로/ 열려있는 가슴속으로/ 나 홀로 걸어간다// 겨울산은/ 마음을 비우고 간 사람에게/ 그 넉넉한 품을 열어준다// 겨울산이/ 저만치/ 가벼운 몸으로 서 있다/ 여름날의 무성했던 신록과/ 가을날의 분주했던 탐욕을/ 모두 일시에 버리고 서 있다// 겨울산은/ 모든 무게를 털어 버린 사람만이/ 먼 길을 가게 열어준다'(유응교의 '겨울산' 중에서)
산은 겨울산이 좋다. 산꾼들은 특히 겨울산을 좋아한다. 속살을 드러낸 나목(裸木), 가림막을 벗어던진 능선, 있는 그대로 골격을 드러낸 겨울산은 덧씌우지도 어떤 장식도 않아 더 진솔하게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초적인 칼바람 소리, 복병처럼 조우하는 눈. 산속에 펼쳐진 설원…. 이 모든 것이 겨울산에 빠지는 나름의 이유일 것이다. 이제 겨울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음미하며 다시 산을 오른다.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능여'내원 계곡
직지사 주차장에 차를 내려 매표소를 지나면 전나무, 느티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만세교를 지나 왼쪽으로 난 개울을 따라 산을 오른다. 공사 중인 직지사 일주문과 경내는 그냥 쳐다만 보고 지나친다. 길옆 개울에는 날씨가 풀리면서 눈 녹은 물이 제법 '콸 콸' 소리를 낸다. 어느 교향악단이 이렇게 완벽한 자연의 소리를 연주할 수 있을까? 눈을 들어 황악산을 바라보니 산은 눈 속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산을 찾은 날은 마침 사찰에서 '사미'사미니계 수계교육'이 열리는 날이다. 계(戒)를 받지 않았지만 스님 복장을 한 동안(童顔)의 비구'비구니 스님과 눈을 마주친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보면서 '무슨 사연을 간직했길래 젊은 나이에 불가(佛家)에 귀의하려 할까?' 생각해본다.
사념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니 내원교다. 황악산에는 능여'운수'내원계곡이 유명하다. 그중 가장 큰 물길을 형성하는 것이 능여계곡이다. '능여'는 고려말 직지사 주지였던 능여 대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없어진 능여암은 능여 대사가 수행하던 암자다. 고려 왕건이 공산전투(927년)에서 견훤에 패하고 도망쳐 직지사에서 능여 대사에게 도움을 청하며 독대한 장소로 유서가 깊다. 계곡 안에는 능여 대사가 수행정진했다는 멱원대(覓源臺)와 능여폭포가 있는데,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지금은 눈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신선이 달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는 망월봉
내원교를 지나면 등산로는 명적암을 사이에 두고 나 있다. 대부분 산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운수암을 통해 정상을 찾는다. 하지만 능여계곡을 통해 망월봉~신선봉을 거쳐 정상을 오르기도 한다. 풍수지리로 보면 직지사를 품은 황악산의 우(右)백호에 해당된다. 오르는 길이 가팔라서 산꾼들이 주로 하산길로 택하는 길이다.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은 호젓하다. 상수도보호구역 표시가 있고 철책이 쳐져 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있다. 이름 모를 산새가 '뽀로롱' 날갯짓을 한다. 암수가 희롱하는 모습이 정겹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끊기고 갑자기 신작로가 나온다. 사찰에서 길을 내기 위해 넓히는 바람에 계곡이 크게 망가졌다. 지나는 사람들은 편리하겠지만 산을 찾는 사람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옛 계곡 길에 익숙해 있던 산꾼들은 아름다운 능여계곡의 예전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물줄기는 무심히 아래로 흘러가지만 옛 모습, 옛 길은 간 데 없다(道破水流在)'는 말이 떠오른다.
30분쯤 뒤 길을 안내하는 일행이 큰길을 버려두고 조그만 오솔길로 잡아끈다. 눈 위에 난 발자국이 아니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능여계곡을 통해 정상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나 이 쪽 능선을 통해 올라가는 길의 경관이 좋다"고 산행을 이끌고 있는 김천시청 석성대 씨가 말했다.
앞선 사람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가니 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 마루금을 비추어주는 은빛 햇살은 한편의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는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데, 볕이 든 곳의 공기는 한결 따뜻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나무 숲으로 난 길을 지나자 능선이 반긴다. 망월봉을 통해 올라온 길과 만난다. 망월봉은 황악산에 살던 부끄러움 많은 신선이 솟아오르는 달의 아름다움에 취해 매월 보름달이 뜰 때면 이 봉우리에 올라 달을 구경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을 안내하는 푯말에는 황악산 정상 4,400m라고 적혀 있다.
◆인생을 닮은 가파른 신선봉 가는 길
능선을 따라 오르니 경사가 여간 아니다. 더구나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수북이 쌓여 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한풍과 대설을 모두 담아내는 넉넉한 황악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경사가 심한데다 길이 얼어 있어 발을 떼어놓기 조마조마하다. 황악산 등산로 중 이곳이 가장 가파르다. 길이 얼어붙고 미끄러워 내려오는 길보다 오르는 길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이마가 닿을 듯 가파른 오르막과 30여 분 씨름을 했을까. 머리 위를 쳐다보니 봉우리가 닿을 듯 보인다. 그런데 아직은 끝이 아니다.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린다. 산 넘어 산이다. 한고비만 넘기면 고생이 끝난 줄 알지만 또 다른 고비가 남아 있는 것이다. 산행이 인생행로를 닮아서 많은 사람들이 산 오르기에 나서는 것이란 생각이다.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고생이 있으면 즐거움도 있다. 어렵게 신선봉(神仙峰'935m)에 오르자 주변 경치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해 준다. 눈 덮인 황악산 정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곳이 황악산 정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청명한 날씨 덕분에 멀리 동쪽으로는 금오산에 이어 팔공산까지 한걸음에 다가온다. 서쪽으로 덕유산 정상과 스키장 슬로프까지 확연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이름처럼 신선이 살았음 직한 빼어난 경치다. 황악산 봉우리는 신선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봉(仙遊峰)에다 운수암에는 황악산 호랑이를 달래기 위해 산신각을 짓고 보기 드물게 산신탱에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를 그려두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찾는 겨울산
신선봉을 지나자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해발 1,000m에 이르자 주변 참나무들이 위로 자라지 않고 난쟁이처럼 옆으로 고개를 늘어뜨리며 자라고 있다. 바람과 추위의 등쌀을 피해 나름대로 살길을 찾은 모양새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산꾼과 마주한다. 운수암을 거쳐 비로봉을 지나 눈길을 헤치며 3시간여 만에 이곳까지 왔단다. 조금 나아가자 예전에 올랐던 질매재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길과 합류한다. 당시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였는데 지금은 많이 녹았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 다져져서 한결 다니기가 편한 눈길이 되어 있다.
비로봉 정상에 이르자 산꾼들이 많아 붐빈다. 날씨가 좋아지자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하다. 비로봉 아래 눈밭에는 산꾼들이 쌓인 눈을 파헤치고 정리해 비박(산꾼들이 산행을 하며 밤에 비나 이슬을 피하기 위해 간단하게 장비를 설치하는 것)한 흔적도 보인다. 부산에서 왔다는 산꾼은 황악산 높이가 1,111m로 1이 4개 들어 있어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잘 풀리길 기대하며 매년 초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저마다의 사연과 소망을 간직하고 산을 찾는 모양이다.
비로봉에서 다시 겨울산의 아름다움에 취해본다. 하지만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앞만 보고 산을 오르려고만 하지 말고 산행을 하면서 주위의 아름다움을 조망하며 산과 인생의 오묘함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한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요즘 기를 쓰고 오르려고만 하는 정치꾼들이 주위에 많다.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차면 기운다(天地之道 極反則)는 산이 주는 지혜와 메시지는 이들이 가슴 속으로 되새겨야 할 화두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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