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별관 지하 1층의 한 식당. 이곳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아늑한 조명이 감돌아 병원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와 같은 분위기였다.
20대 여성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주문하자 곧바로 4가지 반찬에 밥, 국, 샐러드, 과일 후식 등으로 구성된 밥상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이날 메뉴는 현미밥, 콩나물맑은국, 돈육야채말이, 견과류단호박찜, 배추김치였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한정식이다.
하지만 식단 질과 내용은 좀 다르다. 이 밥상은 필수 영양소를 모두 포함하면서 염분과 당분은 줄이고 열량은 400~600㎈를 유지한다. 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고, 식자재는 경북 청송의 친환경영농조합 등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 과일, 채소만을 사용한다.
이 메뉴는 힐링식품사업단이 환자식으로 개발한 친환경 건강 식단이다. 이를 일반인들도 맛볼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이 운영하고 있는 '닥터쉐프'(Dr.Chef)로 의사나 임상전문가가 식단을 짜준다.
김진희(24'여) 씨는 "식단의 영양 분석표를 보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칼로리가 낮아 체중 조절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맛도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 오히려 끌린다"고 평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약처럼 치료 효과도 볼 수 있는 '힐링푸드'가 각광받고 있다. 환자들은 질병과 궁합이 맞는 식이요법으로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반인들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힐링푸드를 찾고 있는 것.
◆'맞춤 식사' 처방해드려요
닥터쉐프에는 식당 이상의 기능이 있다. 손님들에게 개인 맞춤형 힐링푸드 식단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환자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일반인은 닥터쉐프에 상주하는 임상영양사와의 상담에 따라 함께 식사처방지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질병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식사량과 필요한 영양소를 처방받게 된다.
닥터쉐프 정주원(29'여) 임상영양사는 "기존에 교과서적으로 획일화돼 있던 영양 정보를 체계화해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식단을 제공, 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을 관리하도록 돕는다. 특히 질병 치료의 경우 약만큼 중요한 것이 식이요법인데 맞춤 처방을 통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최근 식단을 통한 질병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닥터쉐프를 찾고 있다. 직장인 권문수(55'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는 "친척이 당뇨로 입원해 있을 때 우연히 사 먹은 것을 계기로 닥터쉐프를 종종 찾고 있다. 일반 음식에 비해 조금 싱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익숙해지니 신선한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기게 됐다. 한 달 만에 몸무게를 5㎏이나 줄였고, 만성피로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관심도 높다. 최근 서구형 식습관이나 과음 때문에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 발병 연령이 낮아지면서 젊은이들도 건강 식단을 많이 찾고 있다.
닥터쉐프는 현재 계명대 동산의료원 별관 지하 1층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신관 지하 1층에 마련돼 있다. 힐링식품사업단은 향후 경북대병원 등 다른 지역 병원에도 닥터쉐프를 개설하고, 지역 외식 관련 업체들에 사업단 브랜드인 '닥터쉐프 인증'을 부여해 힐링푸드를 일상 속으로 전파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문요리학원의 도움을 받아 환자식 특유의 싱겁고 밋밋한 맛을 개선, 일반 요리 수준의 맛을 구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임상시험 통해 치료 효과 검증
힐링식품사업단은 2010년 지식경제부 광역경제권 연계협력사업의 하나인 '치료용 로컬푸드 활성화 사업' 추진을 위해 조직됐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테크노파크 바이오헬스융합센터, 경북대학교 등이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힐링식품사업단은 3대 생활습관병인 당뇨, 고혈압, 비만 환자들이 먹을 수 있는 수십 가지 힐링식품을 개발해 놓았다. 당뇨, 고혈압 식단 32가지는 현재 판매 중이고, 비만 식단 42가지는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만성신장질환과 암, 간질, 아토피 등의 치료를 돕는 식품도 조만간 개발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속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환자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
당뇨를 앓고 있는 A(45'여) 씨는 "12주 동안 당뇨 식단을 먹으며 체중이 감소하고, 혈당 수치도 정상치에 가까워졌다. 조리법도 교육받아 간단한 건강 식단은 집에서 만들어 먹으며 주부로서 온 가족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간암 치료 중인 B(65) 씨는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닥터쉐프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날 몸 상태에 따라 적합한 식사를 하게 돼 만족스럽다. 약만 먹었을 때와 달리 치료도 호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식품사업단 서영성(동산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 단장은 "환자들이 식이요법을 통해 제대로 된 효과를 보려면 일단 맛이 있어야 한다. 맛없는 음식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치료 효과가 있으면서 맛도 좋은 환자식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서 단장은 또 "치료뿐만 아니라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 식단의 측면에서 앞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적인 건강식도 널리 확산시키겠다. 맛과 효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억지로 먹던 건강식에서 즐기는 건강식으로의 인식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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