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성적=돈+명예+권력' 한국사회 부조리 끊어야

따뜻한 경쟁/맹찬형 지음/서해문집 펴냄

우리 사회는 '천국'과 '지옥'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서민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를 때쯤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가진 X들의 천국"이라는 푸념이다. 반면에 서민들은 밤낮없이 열심히 애를 써도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세계 1위의 자살률은 '지옥의 절망'을 반영한다.

한류로 대표되는 경이로운 역동성은 전 세계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각박하고 무자비한 얼굴이 숨어 있다. 얼마 안 되는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들은 군사작전 치르듯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승리한 이들은 제 밥그릇 챙기느라 약자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중년과 노년층의 미래, 그리고 청년 일자리는 방치되어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류 스타와 보통의 한국인을 바라볼 때 느끼는 괴리와 혼란은 이처럼 극단적인 한국의 두 얼굴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유럽본부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는 스위스 국민 평균 소득의 3분의 1밖에 벌지 못하는 포르투갈 이주 노동자들도 주말이면 호수 주변에서 바비큐와 수영, 낚시를 즐기며 마음껏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치면 세계 최고인 한국인들이 그만한 여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은 스위스가 매우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2009년 스위스의 공식 대학 진학률은 27%이고, 한국은 82%, 일본 53%, 미국 70%였다. 스위스는 대학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교육시키는 만큼 아무나 대학에 보내지 않는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능력 평가와 선별작업을 실시한다. 이런 엄격한 기준은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 적용된다.

그렇지만 대학 졸업장에 대한 집착이나 콤플렉스는 없다. 굳이 대학에 안 가도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을 소화할 능력과 의지는 없지만 다른 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에게는 관련 직업교육을 받도록 권장한다. 무료인 직업학교에서 공부한 학생은 사회에 진출한 후 충분한 연봉을 받을 수 있고, 경력이 쌓이면 장인(=마이스터)으로서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살아간다. 은행원과 컴퓨터 전문가, 기자를 비롯해 800여 개 직업인들이 직업학교나 전문대학에서 양성된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아도 강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스위스 패러독스의 비밀은 '경쟁'의 '경로분산'이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나누는 것이 경쟁의 경로를 분산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지금 한국사회의 모순은 '가진 X'들이 돈, 명예, 권력 등 사회의 모든 가치를 독점하고, 또한 이를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민들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녀들의 인생마저 포기할 수 없어 '대책 없는 따라쟁이'로 내몰린다. 북한 권력자의 3대 세습만이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235쪽, 1만3천900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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