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노예해방 선구자 프레더릭 더글러스

노예 해방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선구자다. 주인 아내에게 알파벳을 배워 독학으로 글을 깨치고 영혼을 울리는 연설과 글로 노예해방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링컨 대통령에게 노예해방을 건의하고, 흑인들이 북군편에서 싸우도록 독려했으며 여권운동가인 평등권당의 빅토리아 우드헐의 런닝메이트(부통령)로 대선에 나서기도 했다..

1818년 태어났다. 어머니는 흑인노예였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소유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차례의 시도 끝에 1833년 자유시 뉴욕으로 탈출했다. 이 때 도망노예의 신분을 감추려고 성(姓)을 베일리에서 더글러스로 바꾸고 노예해방론자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과 함께 노예제 폐지 운동에 본격 나선다. 이 때 펴낸 자서전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는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노예제 폐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백인들에 대한 도덕적 충고에 머문 개리슨의 운동 방식에 반대하며 결별, 정치 운동에 중점을 둔 독자적 길을 걷는다. 그의 이런 노력은 1870년 인종과 피부색에 따른 투표권 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5조의 비준으로 결실을 맺었다. 컬럼비아 특별구 경찰서장, 아이티 공사 등을 역임, 미국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최초의 흑인이기도 하다. 1895년 오늘 심장마비로 영면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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