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자치재정에 세출의 자치가 없다

한국의 지방재정규모는 양적으로만 보면 OECD 국가들 중에서 높은 수준에 속한다. 세출규모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 속하고 지방세의 비중도 절대적 수치로는 중위권 수준이다. 지방재정의 규모는 지방자치부활 이후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는데 244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권한이 없다고 하소연하며 분권개혁을 요구한다. 왜 그럴까?

지방분권은 단순히 집행하는 기능이 많고 적음이나 예산규모의 크기로 표현되지 않는다. 주민의 삶에 직결된 공공서비스를 주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자치단체가 공급하며 그 부담은 기본적으로 주민의 조세부담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집권이냐 분권이냐는 누가 집행하느냐가 아니라 세출이나 세입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한국의 자치재정은 총량적으로 중앙정부만큼 예산을 집행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게는 결정권한이 별로 없다. 중앙정부가 결정한 사무'예산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자치재정에 세출의 자치가 없다.

집권구조하에서 집행권만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 한국의 자치재정의 실체이다. 그러면 어떤 기제가 자치재정에서 세출의 자치를 빼앗고 있는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기관위임사무라는 사무배분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강제이다.

전자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에는 자치사무와 위임사무가 있고 위임사무란 국가의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에게 그 집행을 위임하는 것으로 단체위임사무와 기관위임사무가 있다. 기관위임사무란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 즉 지방정부의 '기관'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위임된 뒤에도 국가사무로 유보된다. 따라서 기관위임사무의 결정에는 지역주민의 참여도 없고 지방의회도 의결이나 감독권한을 갖고 있지 않고 감사도 제한된다. 자치단체의 '기관'이 중앙정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중앙정부의 대집행이 가능하다.

이 기관위임사무에 관한 비용을 중앙정부는 국고보조금의 형태로 지원하지만 전체비용의 일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체수입으로 부담하도록 한다. 결국 기관위임사무가 자치단체의 세출의 자유를 빼앗은 강력한 통제의 고리인 셈이다. 일본 자치제도의 영향을 받은 제도인데 일본은 2000년 지방분권일괄법으로 기관위임사무제도를 폐지했다.

후자인 의무강제를 살펴보면 자치사무라고 하지만 중앙정부는 법령에 의해서 자치단체에게 사무를 의무화시켜 집행을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법령에 의해서 특정한 시설이나 직원의 배치를 의무화하고 특정서비스의 제공을 강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시설이나 직원의 배치, 서비스의 제공을 의무화하면서도 그 비용을 충분하게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자치단체들이 각종 복지제도의 도입과 함께 재정긴장을 호소하는 주 요인도 이 의무강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이러한 의무강제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정권이 연방정부의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연방정부 권한의 일부를 주정부로 넘기면서 의무만 부여하고 재원보장을 해주지 않아 주정부가 재정긴장상태에 빠졌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기능이양에서도 분권교부세라는 부실한 재원보전방식을 채택하면서 복지지출의 지속적 증가추세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가 현재 자치구재정을 파탄으로 본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요컨대 기관위임사무와 의무강제는 중앙정부에 의한 자치의 제약이며 국가의 책임을 지방에 맡기면서 실질적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권위주의 시절부터 익숙한 각종 지시'통첩도 세출의 자치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세출의 자치를 제약하는 기제들은 경제여건이 악화하고 재정의 기반의 약화되면 곧바로 자치재정을 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이를 자치재정의 '강제형 위기'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기관위임사무의 폐지 또는 개편은 참여정부 이래 분권개혁의 핵심과제로 설정되어 있는데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지방을 자신들의 통제범위 안에 두고 싶어하는 집권적 성향의 중앙관료와 국회의원들의 관행적 행태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총선과 대선공약에도 또 들어갈지 지켜볼밖에!

이재은(경기대 부총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