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면의 캔버스를 입체공간으로 비틀다

갤러리 분도, 장재철展

장재철 작
장재철 작 'Time Space'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 다양한 형상을 그리며 작품을 완성한다. 그런데 이 작품, 서양화가의 작품이라기엔 낯설고 기이하다.

장재철은 캔버스를 구부리고 튀어나오게끔 하고, 그 위에 원색을 매끈하게 칠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회화라기보다는 벽에 걸린 부조처럼 보인다. 화가들이 '캔버스 위에 어떤 것을 그릴 건가'를 고민한다면 이 작가는 '캔버스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주목한다. 캔버스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새롭고 진지하게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분도의 청년작가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열리는 장재철의 전시에는 캔버스의 물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그는 캔버스를 철사로 밀어내 양감을 만든 후 여기에 플라스틱을 수십 번 페인팅한다. 마무리는 다시 표면을 매끈하게 갈아낸다. 작업과정에 굉장한 노동이 들어가지만 작가는 스스로 노동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수고스러움을 지워버린 작품은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고, 차갑다.

"현대에는 인간미 없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직접 손으로 작업하되 극한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붓질의 흔적을 지워내죠. 아날로그적으로 작업하지만 그 결과는 디지털적으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캔버스 자체를 조형 이미지의 한가운데에 두는 그의 태도는 전통 회화와 구별되는 모더니즘의 예술정신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회화가 가지는 최소한의 성질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는 왜 캔버스를 파괴하기 시작했을까. "평면인 캔버스 위에 3차원처럼 보이게끔 그리잖아요. 그 회화의 규칙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물성을 파괴하고 캔버스 자체를 3차원으로 만들어보자 싶었죠."

그는 10년째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의 작품 네 개의 곡선을 모으면 반지름 1m75cm의 원의 일부가 된다. 굳이 원주율을 적용해 작업하는 것에 대해 작가는 "내 안에 있는 수치인 내 발의 보폭을 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이것과, 이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것은 이것일 뿐' 독립된 개체 그 자체로 봐달라는 작가의 항변이 담겨 있다.

아트디렉터 윤규홍은 작가에 대해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 혹은 경계선 위에 놓은 유희는 현대미술의 한 단면이면서, 장재철의 작업이 가지는 매력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분도갤러리는 해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지역 출신 작가들 중 한 명을 선정, 청년작가 프로모션을 벌여오고 있다. 전시는 3월 17일까지 열린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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