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이 새누리당의 텃밭이라면 광주는 민주통합당의 오랜 텃밭이다. 대선 공약이던 신공항 건설이 무산되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대한 실망감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는 기색도 보였지만 투표함을 열면 대구경북에서는 1번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지고 광주에서는 무조건 2번을 찍는 '데자뷔 현상'이 반복된다.
이번 4'11 총선에서 대구에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 광주에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출마했지만 당선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김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이고 이 의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측근이지만 얼마나 먹혀들지는 알 수가 없다. 두 사람의 도전은 상대 당의 텃밭을 정면으로 공략하겠다는 정공법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텃밭에 대한 공략 시도는 지역구도가 고착화된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이벤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의 도전은 지역구도를 깨겠다는 용기있는 시도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당선되거나 당선권에 근접하는 의미 있는 득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일회성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은 김 의원이 TK 정치세력의 진골 격인 '경북고'를 나왔다는 점과 이 의원이 지난 4년 내내 비례대표의원으로서 고향인 호남 예산 확보의 첨병 노릇을 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의 텃밭 지역을 대하는 태도나 '대접'은 시원찮다.
선거 때마다 단단한 지지 기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어려운 국면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내줬음에도 '꼴통'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지역구도의 화신'으로 부끄러워한다. 대구경북이 새누리당(한나라당) 이외의 정치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 정치구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높은 지지와 몰이성적인 몰표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선거 때마다 대구경북을 쇄신과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막대기라도 꽂으면 당선될 것'이라는 식의 안이한 시각으로 대대적인 인적 물갈이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불쾌해하는 분위기가 지역에서 꿈틀대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천을 쇄신 작업의 화룡점정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쇄신 작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사람"이라는 뜻으로 시대정신과 적합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공모 기간을 닷새나 연장하면서 받은 공천 신청자들의 면면에서 참신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재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만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박 위원장이 공언한 '공천을 통한 쇄신' 방침에 대해 "개혁하고 쇄신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의 시간 동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고 준비해 뒀어야 하는데 박 위원장이 그런 준비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과를 속단해서는 안 되지만 사실상 부정적인 전망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와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현역 의원에 대한 25% 교체 등 50%에 이르는 교체비율을 강조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인재를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무조건 많이 교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 내지 않고 절반에 가까운 교체 비율을 고집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국민과 지역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경쟁력까지 갖춘 인재라는 기준이 아니라 텃밭이라는 이유로 '친박' 색채가 강한 인사들만 내리꽂는 공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4년 전 박 위원장이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에 대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던 일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텃밭 정치'를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텃밭은 존재한다.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정치 행태를 '후진 정치'로 비판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의 텃밭 정치가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갈등구도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나쁜' 정치구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텃밭일수록 당을 장악한 세력의 입맛에 맞는 '누구나'가 아니라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와 정성이 더 필요하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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