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라는 이름에 대해서 3가지 설이 전해진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명확하게 제시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이들 주장에는 나름 '진실과 거짓(?)'이 숨어 있다.
먼저 조계종 쪽에서 무게를 두고 있는 사명(寺名)이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유래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름 반론이 많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고 주창한 달마(達磨) 조사는 활동 시기가 6세기이다. 직지사 창건 연대인 418년에는 중국에서조차 선종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우리나라에 선종이 들어온 것이 9세기 말로 보아 절 이름이 '직지인심'에서 유래됐다는 것은 시대 상황이나 논리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아도화상 부분도 다소 모호한 것이 많다. 국사 교과서 등에는 신라 불교를 처음 전한 승려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墨胡子)라고 했다. 그런데 도리사'직지사의 기록을 보면 아도화상이 신라 불교를 처음 전한 것으로 돼있다. 묵호자와 아도화상이 동일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사료에 따르면 아도화상'묵호자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만 활동 연대가 미추왕에서 소지왕까지 300년을 넘나든다. 최근 일부 자료에 동일인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단정하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더구나 묵호자는 얼굴이 검은 사람 즉 인도사람을 통칭한다는 자료도 있다. 이들에 대한 생몰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어 안타깝다.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은 "보통 대부분 사찰이 절의 역사를 위로 끌어 올리려는 경향이 빚어진 혼선"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이 의상, 원효. 도선국사 등 큰스님 몇몇 분이 창건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볼 때 직지사는 아도 스님이 창건한 것에 대한 믿을 만한 자그마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창건은 능여 스님 무렵이다. 능여 스님이 계섰던 당시의 상황이나 선수행을 행한 모습이 사찰 내 곳곳에 배어 있다. 이후에는 일관되게 직지사에 대한 기록이 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신라 경순왕 때 직지사에서 금자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볼 때 신라 말에도 직지사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다. 고려 때는 능여와 왕건의 인연 등으로 굉장히 사세가 커졌고 직지사란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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