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61) 담(譚)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그의 인생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색 키워드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직업 군인'예술행정가'수필가'스토리텔링 연구가는 김 원장의 인생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3사관학교(영천)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대령으로 예편한 후 스토리텔링연구원을 설립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있는 김 원장을 만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국방 의무 다하기 위해 선택한 장교의 길
김 원장은 1973년 12월 3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했다. 그가 장교가 된 것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숙명인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영천이 고향인 김 원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중앙대에 입학했지만 1년을 다니다 중퇴했다. 대학 진학이 드물었던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가는 것은 웬만큼 부유한 집안이 아니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집안에서는 학비가 들지 않는 경북대 사범대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보다 큰 안목을 키우기 위해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다행히 출신 고교에서 학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 줘 급한 불은 껐지만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것이 만만치 않아 결국 학업을 포기했다. 학교를 그만두자 당장 군 문제가 걸렸다. "중퇴를 하자 입대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기왕 군대 갈 거면 장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고졸 학력으로 장교로 지원할 수 있었던 곳이 3사관학교였습니다."
1972년 1월 3사관학교에 입학한 김 원장은 5년간 의무 복무기간만 채우면 옷을 벗을 생각이었다. 그의 장래 희망 리스트에는 직업 군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정경연구'라는 잡지를 즐겨 읽었는데 글로써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감동을 주는 직업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수 아니면 신문기자가 될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계획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듯 그는 3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40여 년 직업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첫 단초는 야간대학 진학이 제공했다. 김 원장은 못다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게다가 장교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대학 공부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기대에 진학해 주경야독으로 행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 원장은 1979년 3사관학교 교수 요원으로 선발됐다. "국방부 장학생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문화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3년 3사관학교 행정학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장래 희망이었던 교수의 꿈을 군에서 이루었으니 군을 떠날 수 없었죠."
◆군에 예술행정 문화를 심다
김 원장은 1993년 경남대 대학원에서 행정철학으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지식 욕구는 끝이 없었다. 공부를 그만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 주제인 행정철학이 미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예술행정을 공부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 원장은 예술행정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대구가톨릭대 예술학과 대학원 진학을 위해 정순복 교수를 만나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정 교수가 대학원 진학 대신 사사를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매주 정 교수를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재미없는 미학을 주제로 두 남자가 열심히 토론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비춰졌나 봅니다. 10시간 이상 토론을 한 적도 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본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김 원장은 자신의 행정학 지식에 사사한 미학 지식을 접목시켜 2000년 3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예술행정 과목을 신설했다. "예술행정 과목을 개설할 당시 군기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과과정 개편을 위해서는 육군참모총장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데 재가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술행정 과목을 개설하는 과정에서 김 원장이 작사한 군가와 당시 시대상이 큰 몫을 했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에는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군은 새천년 강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여러 가지 변화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군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딱딱하고 틀에 박힌 군가 대신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는 군가가 필요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군가 공모를 했습니다. 그런데 접수된 군가가 모두 함량 미달이어서 군 내부에서 작사를 할 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방일보에 글을 자주 연재했던 김 원장이 적임자로 떠올랐다. 그에게 새천년에 맞는 군가를 작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새천년 열어가자'라는 군가가 탄생했다. '새천년 열어가자'는 1999년 국군의 날 행사에 처음 사용되어 경쾌하고 희망찬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군가를 작사하면서 군도 변해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를 감지한 김 원장은 "예술은 군기를 흐트리는 것이 아니라 군 문화를 조화롭게 만들 것이다. 새천년에는 문화가 키워드가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장교들도 예술행정을 알아야 한다"며 군 수뇌부를 설득해 예술행정 과목을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예술행정 과정까지 수학한 김 원장은 이후 예술행정 전문가가 됐다. 대구가톨릭대를 시작으로 경북대'전주대를 거쳐 대경대에서 예술행정을 강의할 정도로 군 외부에서도 예술행정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 그가 개설한 예술행정 과목은 장교들이 기계적 틀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술행정 과목이 개설된 초기 3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선견지명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행정이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군 문화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스토링텔링 연구가로 변신
김 원장은 올 1월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을 설립했다. 고향 영천에서 지식인으로 평생을 보낸 그가 영천 발전을 위해 기획한 일이다. "퇴임 후 제가 가진 지식을 활용해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다 스토리텔링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숨어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영천의 역사와 문화, 자연, 영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영천 시민들과 공유하고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토리텔링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가진 연구원 이름(담나누미)을 직접 지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숨어 있는 미담을 찾아 지역 사람들과 아름다운 가치를 나누는 일을 남은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당분간 곳간 채우는 일에만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연구원이라는 커다란 곳간을 지었으니 본격적으로 내용물을 채워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자랑하는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연구원으로 위촉했다. 연구원들은 스토리텔링 소재를 찾아 이야기로 재구성한 뒤 이를 알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그가 관심을 갖고 스토리텔링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은 노계 박인로(1561~1642)다. 김 원장은 영천 출신으로 가사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박인로의 생애를 조명해 스토리텔링화 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 그는 스토리텔링 공모전과 스토리텔링 강좌를 개설하고 담토킹클럽도 만들 생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담토킹클럽은 이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토리텔링 소재도 발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은 세상을 보는 특수 렌즈
김 원장은 스토리텔링이 세상을 보는 특별한 렌즈이자 삶의 에너지원이라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라는 특수 렌즈로 사물을 보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사는 재미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 원장은 영천의 스토리텔링 소재를 토담(土譚'자연이야기), 유담(遺譚'역사문화재이야기), 활담(活譚'생활이야기), 업담(業譚'산업이야기), 충담(忠譚'나라사랑이야기) 등 5가지로 구분했다. "나라사랑이야기, 산업이야기하면 식상하게 다가오니까 스토리텔링에 맞게 충담, 업담 등으로 제가 각색해 구분한 것입니다. 설화나 전설이 얽힌 보호수나 바위 등은 토담, 조양각 등 문화유산은 유담, 영천아리랑 등은 활담, 영천 포도와 승마산업 등은 업담, 한국전쟁 영천방어전투 등은 충담에 속합니다."
김 원장은 연구원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인내를 갖고 하나하나 일을 하다 보면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성과라는 부분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미담을 나누는 아름다운 지역 사회를 가꾸는데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순리대로 모든 것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계주로 생각하며 군 생활을 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뛰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 주는 것이 계주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뛰기 위해 욕심을 부려 바통을 제때 넘겨주지 않으면 사단이 발생합니다. 곳간이 채워지고 연구원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남은 계획입니다."
◆작가 김정식 씨는
김 원장은 '월간 에세이' 추천을 통해 1990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는 1992년 실존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나 어디 있는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은빛 목걸이''나를 디자인합니다''일류에게 로비가 있다' 등 4권의 수필집을 냈다. 조만간 편지글을 추려서 엮은 다섯 번째 수필집 '동짓달 편지'를 출간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군 내부에서는 군가 작사가로 명망이 높다. 오랜 수필 습작을 통해 다져온 글 솜씨를 바탕으로 '위험하니 내가 간다' 등 5곡의 군가를 작사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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