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인식의 한계는 종종 오류를 낳는다. 때로 관습과 신념은 참된 것을 외면하고 오류를 진실인 양 혼동하기도 한다. 대상의 정확한 실체를 아무도 모르고 진실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할 경우 더욱 그렇다. 미지의 영역일수록 보편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류는 발생하고 또 피해갈 수도 없다.
단편적인 사료와 유물에 의존해 추론하고 해석하는 역사학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해석의 차이로 인해 주장과 가설이 맞서고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사실에 근접하려는 학문적 호기심과 연구 열의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뒤집어보면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타당하다고 인정받아온 것도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고 다른 근거가 드러날 경우 오류로 전락하고 만다. 입증된 성과라는 것도 사실 참과 오류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조선시대 이전의 대형 고분(古墳)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좋은 사례다. 특히 신라 왕릉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피장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벌이는 논란이 300년 가까이 계속됐다. 조선 영조 때 경주 선비 유의건의 문제 제기 이후 추사 김정희와 위당 정인보, 이병도 등으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 신라 왕릉의 문제점에 대해 총체적 접근을 시도한 학자가 경주대 이근직 교수다. 그는 피장자가 확실한 왕릉은 선덕여왕릉'무열왕릉 등 7곳뿐이며 나머지는 잘못 구전되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애초 묘지석이 없었거나 도굴에 의해 부장품마저 멸실돼 해석의 여지마저 줄어든 현재로서는 그의 주장이 오류가 아님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하지만 학자의 입장에서 이는 고통인 동시에 축복이다. 사실이 명확하고 손쉽게 입증된다면 학자의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굳이 사료를 찾아 분석하고 추론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연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뜬 그의 유작이 단행본으로 출판됐다는 소식이다. 신라 왕릉의 기원에서부터 역대 신라 왕릉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연구한 '신라 왕릉 연구'다. 이 책이 거둔 학문적 성과가 어떻든 평생 신라 왕릉 연구에 매달려 잘못된 구전과 오류를 바로잡으려던 그의 학문적 열의와 자세는 높이 살 만하다. 그의 노작이 후학들의 신라 왕릉 연구의 도화선이자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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