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새벽의 묵상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머리를 어지럽히던 지난밤의 상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잠자리까지 따라온 탓일 게다.

사위(四圍)는 깊은 바다 속 같은 어둠에 싸여 있다. 멀리 앞산에서 간간이 부엉새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며 지나간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도 한잠을 더 청해야 할 시간이다.

찬물로 훌훌 세수를 하고서 책상 앞에 앉는다. 금세 잠은 달아나고, 정신이 안개 걷히듯 맑아 온다. 침묵에 잠겨 있는 세상을 그윽한 눈길로 응시하면서 하루치 삶의 설계도를 그려 본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내일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였던 소포클레스는 '오늘'에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불후의 명언이 전류처럼 지르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아무 대가 없이 공으로 주어진 이 하루를, 살아 있음으로써 또 이처럼 맞이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저께는 지역의 원로 수필가 한 분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났다. 벌써 삼십 년 전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늘 선사처럼 초연히 사셨던 분이다. '장례 절차를 절대 화려하고 번다하게 하지 말거라. 주위에 요란스레 떠벌이지 말거라. 너무 애통하게 곡을 하지 말거라.' 문상 자리에서 유족들이 전해준 그분의 마지막 당부가 자꾸만 뇌리를 맴돈다.

생을 끝맺음하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수고로움을 끼치지 않고 떠나려 했던 고매한 인품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존경의 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네 삶이란 마치 러시안룰렛과도 같은 것, 어차피 한 번 생을 부여받았으니 죽음도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한 번은 받아야 하는 절대자의 선물 아닌가.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다만 조금 앞서 가고 조금 뒤미처 가고 하는 시간상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래, 이것이 사람의 한평생일 테지…….' 잠시 마음이 울울해지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란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뜻있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내일 바람같이 훌훌 사라지더라도 그리 애석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항시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생을 꾸려가야 할 것 같다.

묵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녘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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