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대구경북에 태어나서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가서 산 것은 40년 전 군생활이 처음이었다. 당시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해 중앙정부로부터 상당히 소외된 지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있어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모두가 반겨주었고 친절히 대해주었다. 40년이 지났지만 그때 따뜻하고 정 많던 전라도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뛰어가고 싶을 정도다.

그 뒤로 사업을 하면서 호남지역으로 사업 활로를 여는 일도 열심히 했다. 호남사람도 많이 채용해 왔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때는 대구경북이 힘이 있는 도시였고 호남지역이 상대적으로 약했는데, 어느덧 대구경북의 위세가 많이 변했다 싶다. 전라도 인심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고향 대구경북에 대한 아쉬움을 거둘 수가 없다.

1970, 80년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던 도시는 대구경북이었다. 대통령도 대구경북 사람이었고, 고급공무원에도 대구경북 인사가 가장 많이 포진해 있었다. 특히 대구는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중심이었고 경제성장률도 어느 도시보다 높았다. 갑을, 동국 같은 섬유회사들과 청구, 우방 등의 건설회사들이 전국 무대를 휩쓸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잘나가던 섬유업체가 부진해지기 시작했고, 다른 분야도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1992년 삼성차 대구 유치가 진행되다가 부산으로 가버렸고 그 상태로 IMF를 맞으면서 삼성 상용차공장마저 없던 일로 돼버렸다. 현풍지역에 100만 평 쌍용차공장도 실제로 세워지지 못했고, 위천공단 200만 평도 건설되지 못했다. 그뿐인가. 1995년 대구상인동지하철가스폭발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 터져 도시 이미지를 많이 떨어뜨렸다. 요새는 KTX가 있다지만 기업을 하다 보니 여전히 비행기 연결이 원활치 않아 외국과의 교류에 어려움이 있다. 밀양 신공항 유치를 외치는 대구경북의 염원도 이루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은 대구가 모든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와있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젊은이가 떠나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 가면 '어떻게 그 어려운 대구에서 사업을 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려올 만큼 내려왔으면 분명 올라갈 때가 있다. 얼마 전부터 필자는 대구에서 서광을 보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것과 삼성라이온즈 야구팀이 한국시리즈 우승뿐 아니라 아시아 우승까지 한 일은 대구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또 국가산업단지 선정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첨단의료단지, 뇌과학 연구원 등도 대구의 새로운 미래를 한층 밝게 하고 있다.

거기다 섬유류는 고품질로 전환하면서 주문량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도 20~30% 넘게 고성장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IMF 때 대한중석이 이스라엘의 절삭회사 IMC그룹에 팔리면서 대구텍이라는 회사가 됐다. 그때 사람들은 이 좋은 회사가 외국에 팔려간다고 무척 애통해했다. 이후 회사 이름이 대구텍이 됐고 자본과 기술이 투자되면서 최신시설로 바뀌었다. 이 회사는 인수 당시 매출이 약 1천억 원 정도였다. 현재는 유한회사라서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작년 한 해 매출이 약 7천억 원 정도라고 외부에서 보고 있다. 이 대구텍은 현재 한국 절삭 분야 1위일 뿐 아니라 65% 이상을 해외로 수출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회사가 되고 있다. 앞으로 얼마 가지 않아 1조원 매출을 달성할 전망이다. 대구텍뿐 아니라 포항, 구미 등지서도 일본기업의 투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공구산업용품 유통회사를 40년째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분야 1위를 하고 있고 근간에는 공구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대기업들이 우리 회사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전국에서 1위 하는 기업이 어떻게 지방에 있느냐면서 서울로 본사를 옮기지 않겠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고향에서, 내가 살아온 이 땅에 본사를 두고 사업을 하고 싶다.

우리 회사의 슬로건은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일부터'다. 앞서 말한 영호남 장벽에 대한 마음도 이제는 우리 대구경북이 먼저 거두고, 경기침체라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더 힘을 내보고, 또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이지만 힘을 모은다면 대기업 못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10년 후에는 더욱 발전된 희망에 찬 대구경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구 경북이여! 한 번 더 활개를 펴자.

최영수/크레텍책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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