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기관지폐 이형성증' 아들 지키는 베트남인 투엔 씨

"6개월 만에 태어난 보석, 한번만 안아봤으면…"

태어난지 35일된 티엔안이 마주한 세상은 모든 것이 장애물이다. 혼자 숨을 쉴 수도, 엄마 젖을 먹을 수도 없는 아기는 낯선 기기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태어난지 35일된 티엔안이 마주한 세상은 모든 것이 장애물이다. 혼자 숨을 쉴 수도, 엄마 젖을 먹을 수도 없는 아기는 낯선 기기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아가, 엄마 좀 봐. 아가."

28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는지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태어난 지 35일 된 티엔안은 보통 아기들보다 4개월 일찍 세상과 만났다. 엄마 투엔(가명'28'여) 씨의 아기집에서 26주도 지내지 못하고 급하게 세상에 뛰쳐나왔다. 아직 어른 손 두 뼘도 안 되는 키에 몸무게도 1㎏을 간신히 넘긴다. 여태 아들을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투엔 씨는 아들이 어서 나아 젖을 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결혼식 전날 태어난 아들

지난달 23일 설날은 투엔 씨의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결혼식에는 남편 반(가명'29) 씨만 참석했다. 결혼식 바로 전날 밤 투엔 씨는 아픈 배를 움켜잡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몸무게 850g밖에 안 되는 아기가 태어났다.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남편은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예식장으로 달려갔고 하객들에게 아내의 소식을 전했다. 행복한 결혼식을 꿈꾸며 한국에서 모은 돈 700만 원을 쏟아부었지만 투엔 씨는 결국 웨딩 드레스 한 번 입어보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고향인 베트남 광빙에서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각자 한국으로 떠났고 반 씨가 2008년 11월 먼저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근로비자 발급이 어려웠던 투엔 씨는 2009년 위장 결혼을 해 한국에 겨우 입국했다. 투엔 씨는 대구의 자동차부품공장에서, 반 씨는 경북의 금속공장에서 일했지만 신분은 불안했다. 투엔 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위장 결혼 사실이 적발됐고, 선원비자로 입국한 반 씨도 비자가 만료돼 둘 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꼬리표를 붙이고 다닌다. 지금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을 피해 숨어지내는 신세다.

문제는 갓 태어난 아기였다. 불안한 엄마 아빠의 신분 때문에 아기는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투엔 씨는 지난달 아기와 함께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친구의 건강보험카드를 빌려서 자신과 아기 진료비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 신분을 속이고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사실을 털어놓았고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이를 안을 수 있다면…"

아기는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티엔안은 한 달째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코와 위 사이에 연결된 튜브로 영양제를 주입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간다. 고비도 있었다. 지난주 원래 몸무게가 850g이었던 아기가 650g으로 줄어들어 병원 식구들의 가슴이 내려앉은 적도 있었다. 주치의인 정지은(33'여) 신생아학과 전문의는 "신생아가 인공호흡기를 30일 이상 달면 '기관지폐 이형성증'이라는 병을 붙여준다. 티엔안은 지난달에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말랐었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됐다. 적어도 몸무게가 1.5㎏ 이상 돼야 스스로 호흡이 가능한데 티엔안은 보육기 안에 좀 더 있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딱 한 번 엄마 젖을 먹었다. 투엔 씨가 집에서 짜온 젖을 아기에서 먹여 달라며 간호사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투엔 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투엔 씨는 "티엔안이 빨리 건강해져서 꼭 안고 젖을 물려봤으면 좋겠다. 아기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까 봐 걱정이 돼 밤마다 잠을 설친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제는 병원비다. 조산아는 대부분 엄마 뱃속과 똑같이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주는 특수 보육기 안에서 지내는데 이 기계를 사용하면 병원비가 많이 발생한다. 또 영양제와 각종 소모품 사용 비용도 보호자가 부담한다. 그러다 보니 한 달간 나온 병원비가 2천300만원이 넘는다.

반 씨의 월급 130만원을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이 돈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베트남 친구들이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정성을 보태 100만원을 모금한 것이 전부다. "우리 아기, 죽으면 어떻게 해요. 도와주세요." 어설픈 그의 한국어에서 깊은 모정이 느껴졌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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