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지 여러 겹 붙이고 뜯고 문지르고…새롭게 찾은 한국화의 '현대적 미감'

김춘옥 작
김춘옥 작 '자연-관계성'

한국화의 현대적 미감은 무엇일까. 이것은 쇠퇴하고 있는 한국화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면 끊임없이 논의되는 문제다. 많은 작가들이 한국화의 현대적 미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화가 김춘옥이 찾은 한국화의 새로운 미감은 한지의 물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20년 이상 수묵화 작업에 천착해오다 2000년 초, 과감하게 작업 방식을 바꾸었다.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하고 이를 뜯어내 형상을 만드는 작업이다. 작가의 손길이 오가고 나면, 한지 위에는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어난다. 한국화의 '정신'은 곧게 세우되, 소재와 방법을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수묵만으로 작업하다 보니 평면적이고 가볍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한국인을 구별하는 것은 외모도, 옷도 아닌 정신 그 자체니까, 정신은 지키되 옷은 갈아입고 싶었죠."

한지는 그동안 한국화의 '재료' 역할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지를 작품에 본격적으로 들여와 중요한 소재로 사용했다. 한지를 5겹 이상 배접해 올린 후, 여기에 수묵과 채색을 가미하면 한지는 색을 흡수해 번진다. 한지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색은 옅어지고, 가장 아래쪽은 흰색 한지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자연스러운 한지 겹들 사이의 농담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부분적으로 뜯어내면 색이 있는 줄기가 되고, 한 겹 더 뜯어내 잎사귀를 만드는 식이다. 가장 아래 흰 소지로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다. 콜라주와 정반대 형식의 작품은 입체적인 공간감이 돋보인다.

"그리는 대상은 한국화의 그것을 사용했어요. 모란, 연꽃 등은 다산, 복을 기원하는 한국인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먹 또는 색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색감은 작품에서 독특한 미감을 선사한다. 안료를 쌓아올려 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깊이의 아름다운 색감이 나타난다. 작가의 작업은 커피를 마시며 양복을 입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느끼는 감성이자 아름다움인 것이다.

작가는 10년 이상 질긴 한지를 뜯어내고 문지르느라 지문이 닳아 없다. 마치 꿈꾸는 듯한 화면 속에는 한국화를 현대화하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한 작가의 여정이 담겨 있다. 김춘옥의 전시는 서울 조선화랑 40주년 기획전에 이어 맥향화랑에서 16일까지 열린다. 053)421-200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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