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현장을 찾아 직접 취재한 글들을 통해 우리 시대를 증언하는 르포 작가 박영희가 가정 붕괴의 위기에 내몰린 중국 조선족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조선족 아이들과 교사,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한 르포 '만주의 아이들'이 그 책이다.
"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모두 다 갔다/ 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미국에 갔다 러시아로 갔다/ 잘살아 보겠다고 모두 다 갔다 눈물로 헤어져서 모두 다 갔다/ 산다는 게 뭐이기에 산산이 부서져/ 그리움에 지쳐 가며 살아야 하나/ 오붓하게 살아갈 날 언제나 올까 손꼽아 기다린다네." '모두 다 갔다'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오늘날 중국 조선족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동북 3성 곳곳에서 중국 정부가 떠벌려 대는 조선족 자치주 해체설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막말로 연길에는 이제 조선족이 없다는 말이 더 타당해 보였다."
1995년 한'중 수교 이후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한국에만 가면 중국에서 버는 수입의 몇 십 배를 벌 수 있다는, 이른바 '코리안 드림' 현상으로 만주는 사람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아졌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부터 조선족들이 100년 넘게 지켜온 고유의 문화, 가족 윤리, 성 윤리가 일거에 망가졌다. 14억 인구를 가진 대륙에서 조선족 자치주 주도인 연길시는 최근 노래방 수에 이어 이혼율까지 1위를 차지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중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이 앞다투어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들을 양성하던 곳답게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민족 교육의 열기가 드높던 곳이다.
"한국 바람, 간다 바람이 먼저고 자녀를 돌보는 일은 안중에도 없단 말입네다. 한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이 고생이라면, 이곳에 남은 자녀들은 고통이지요."
인터뷰에 응한 한 교사는 담임을 맡은 중학교 1학년 24명 중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은 19명이며, 이 중 부모가 이혼한 학생은 9명이라고 말한다. 한두 해도 아니고 대여섯 해를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학생들의 심리가 온전하기 어렵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혼자서 그 강을 건넌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며 시련입니까."
만주에서 발행하는 조선족 신문 기사에는 '심양시 조선족 결손가정 학생 총 가구의 65%'와 '장기 분거, 이혼 등 자녀 교육과 성장에 악영향'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교사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선족 아이들이 '가슴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교사와의 담화에서 입을 열기 전 몇 차례 한숨을 내쉬고, 그다음 말과 눈물이 동시에 터진다고 한다. 어른들은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그걸 가슴으로 삭일 이성을 갖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부모에 이어 주변 친척들마저 떠나고 나면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숙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학생들 스스로가 기숙사를 막장쯤으로 여긴다고 한다.
"조선족에게 불어닥친 한국 바람은 이렇다 할 대비책이 전혀 없는 가운데 터진 일종의 전쟁 같은 충격이었다. 부모와 잠시라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러운 부모의 부재와 이혼은 술래잡기 놀이에서 술래를 잃어버린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동북 3성에서 노른자위는 모두 조선족 땅이었던 시절, 중국 정부가 조선족들에게 근면성과 성실함을 배우라고까지 했던 조선족 사회는 최근의 한국발 폭풍으로 사회와 가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며 아이들의 미래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고 현지인은 증언한다.
부모 세대와 달리 조선족 3, 4세대는 중국을 자신의 국가이자 고향으로 여기며, 이들에게 한국은 그저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만 여겨지는 것을 저자는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들에서도 생명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는 흙의 기운처럼, 만주의 아이들을 지켜줄 사랑의 힘을 믿고 싶어 한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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