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연극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가를 활용하기 위해서 혹은 이성교제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극의 재미 때문이다. 재미가 없는데 돈까지 지불하며 연극을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연극의 재미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복잡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재미라는 단어의 개념부터 제대로 알고 난 다음에 연극의 재미에 차근차근 접근한다면 연극의 재미는 더 커지고 연극을 보아야 할 이유 또한 명확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연극을 보는 이유와 연극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모두 연극의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재미라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재미'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을 말한다. 또한 좋은 성과나 이익 또는 보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안부를 물을 때 쓰는 말일 경우에는 사는 형편이나 살아가는 맛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쨌든 주목할 점은 재미라는 말의 '미'라는 글자가 한자 '맛 미(味)'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재미가 있다는 것은 어떤 맛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맛이라는 것은 일정한 절대적 기준에 맞춰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모호한 것이다. 사람들마다 재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같은 연극을 보고도 누구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재미의 종류 또한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독 특정한 재미에만 집중하며 그것이 재미의 전부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흔히들 '코미디'라고 부르는 웃음이 주가 되는 연극만이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극뿐만이 아니다. 영화나 방송드라마 등을 보면서도 웃기는 게 많으면 재미가 있고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웃음은 많은 재미의 종류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웃음 이외에도 눈물, 액션, 사랑, 공포, 무관심, 경이로움 등 수많은 종류의 감정이나 표현방법, 볼거리 등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같은 것을 보고도 느끼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라는 것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음식과 비슷하다. 음식에는 다양한 맛이 있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 설령 같은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해도 누구는 고추의 매운맛, 누구는 겨자의 매운맛, 또 누구는 후추의 매운맛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똑같이 고추의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좋아하는 매운맛의 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특정한 음식이나 특정한 맛만을 찾는 것이 좋지 않듯이 연극의 특정한 재미만이 연극의 재미라고 생각하며 관람하는 것도 좋지 않다. 음식의 경우처럼 연극에도 다양한 맛, 즉 다양한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누구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극도로 혐오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마치 혐오식품이나 불량식품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연극의 경우에도 아무런 개연성이나 예술성이 없이 무조건 옷을 벗기거나 웃기려는 수준 미달의 작품이 있다. 한마디로 오직 대중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해 작품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불량연극이다. 이런 불량연극의 경우는 대부분 특정한 맛에 집중해 그 자극적인 맛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그 맛에서 삶의 다른 면이나 철학적인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그 맛이 작품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연극은 순간적으로는 재미가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불량연극이며 재미가 없는 작품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의 재미는 웃음, 눈물, 공포, 흥분 등 특정한 감정의 재미나 특정한 장르의 재미가 아니라 작품 전반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동은 눈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실한 감정의 움직임, 깊이 느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때로는 씁쓸함이 될 수도 있고 황량함이나 쓸쓸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 중에 의외로 명작이 많은 것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가 지닌 깊은 맛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맛은 패스트푸드와 다른 청국장의 맛처럼 익숙해져야만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연극의 재미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 당장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재미의 기준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분명히 연극의 재미도 커질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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