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한미 FTA, 힘들고 벅차지만 반드시 이겨 나가야 할 도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FTA는 축복도 아니고 재앙도 아니다'고 인식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봤다. FTA가 많은 문제점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방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문을 닫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괴롭고 힘들고 벅차지만 이겨나가야 할 도전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갖고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는 5년 내내 친노진영의 '정책좌장' 역할을 해 온 김병준 국민대교수(57)가 한'미 FTA를 둘러싼 노 전 대통령의 입장 변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대해 작심한 듯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김 전 실장이 2월 초 펴낸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은 사실상 진보진영에 던진 자기성찰 요구이자 비판서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그는 민주통합당 내의 한'미 FTA 반대론자들이 내놓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다가 뒤늦게 미국 금융위기가 오자 잘못 생각했다고 여기고 재협상을 주장하고 나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며 단호한 어조로 한'미 FTA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융위기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참여정부 정책라인과 노 전 대통령이 세계경제 흐름에 대해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당시 정책라인에서는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경제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금융위기가 와서 입장을 바꿨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정책팀이 모두 자결하든지 해야 한다"며 FTA를 둘러싼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우면서 분노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분노의 소산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제는 MB만 나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 분노는 또다시 분노의 부메랑이 돼서 자기 목을 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런 분노의 정치를 되풀이하고 국가를 이끌어갈 것인지 성찰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에 대해서도 "임기 내 성과주의가 모든 것을 망쳤다"고 지적했다. 청계천 사업과 4대강 사업 등 이 대통령이 추진해 온 대부분의 국책사업은 임기 내 성과주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입장을 선회한 한'미 FTA 문제부터 짚어봤다.

-한'미 FTA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은 반대다. 노 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노 전 대통령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여권이나 일부 찬성론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과도하게 FTA가 축복인 것인 양 호도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참여정부 때의 FTA와 내용상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준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야당은 그것을 주장했어야 했다. 지금 야당이 노 전 대통령이 금융위기를 보고 입장을 바꿨다고 하고 또 하나는 이익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하는데 맞지 않다.

참여정부가 (협상을)잘 해놨는데 이 대통령이 재협상으로 안 내줘도 될 것을 내줬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문은 분명히 손해를 봤다. 연간 손실이 최소한 몇천억원 이상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 한'미 FTA 폐기까지 가는 논란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자동차 업계에서 제기해야 하는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보다 더 본질적인 차이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다. ISD조항이 실제 위험하다. 우리 행정 관행이 후진적인 데가 있어서 이대로 운영하다가는 실제로 소송에 걸릴 수 있다. 참여정부에선 정책관리과정을 다 준비했지만 이 정부에서는 이것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은 이런 부분들을 시비 걸어야 한다.

-야당 내에서는 여전히 FTA 찬성론자들에 대한 공천을 두고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유치하다. 축복도 재앙도 아닌 문제를 두고서 이쪽이냐 저쪽이냐는 논란은 정말 유치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정치를 못한다. (정치를 하게 되면)그런 유치한 짓을 같이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제의가 있었다. 대구에 가서 떨어지라는 것이다. 정치는 꼭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가서 죽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문제는 그 죽음이 헛될까 봐 그런다. 지난 대구시장 선거 때도 한쪽에서는 나가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혹시 내가 나갈까 봐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전히 분노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 그것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코리아스픽스 등을 통한 성장담론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야권에서는 집권하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정말로 믿는다면 그분은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정치는 그렇지 않다. 누구도 모든 것을 바꾸지 못한다. 다시 탱크를 밀고 들어와도 되지 않는다. 이미 권력이 다원화된 사회다.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단 하루도 대통령을 해내지 못한다. 만일 그런 주장이 선동이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집권한 다음에 거기에 현혹된 대중은 상당한 보상을 기대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로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국민들을 다 잘살게 할 수 있는가. 사실 앞으로 몇 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모든 문제가 MB로부터 발생했다고 하는데 그게 맞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MB는 곧 사라진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이번에 낸 책은 그것을 고민한 결과인가.

"노 전 대통령은 그런 것을 고민한 사람이다. 어떻게 먹고살고 영세자영업자를 어떻게 낮출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해 진보세력은 '너 우회전한다. 너 성장론자다. 신자유주의자라고 라벨링해서 몰아붙였다. 영리법인 이야기만 꺼내면 신자유주의자로서 나라 팔아먹는 사람이라고 코너에 몰아붙였던 사람이 진보진영 사람들이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노무현 정신' '노무현 초상화' 들고 다 이야기한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정책은 하나도 안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반대로 가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다음에 어떤 진보 대통령이 들어와도 그분이 국가를 위해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노 전 대통령과 똑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때도 또 코너로 몰아붙이고 죽일 거냐고 묻고 싶다.

-진보의 가치는 개방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진보의 진정한 가치는 상생과 평화, 인권 아닌가. 그것이 개방일 수도 있고 개방이 아닐 수도 있고 서비스산업 육성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장을 배격하는 것이 어떻게 진보의 가치인가. 그것을 놓고 고민해 봤을 때 우리가 시장구조는 이만큼 허용하는 만큼 재정 부분에서는 이렇게 해서 상생과 분배를 해나가자는 것 아닌가.

시장논리는 시장논리대로 인정하고 조세를 통한 재분배를 통해 국가의 사회정책적 기능을 인정해주면서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가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을 쓴 이유는.

"본질적 화두는 분노의 정치, 상대를 힐난이나 하고 반사이익 얻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걸 알려면 정책의 구조를 좀 알아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구조도 알아야 하고 누가 나를 이용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가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치부해 왔다. 지금쯤 되면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통령 한 사람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친노는 대통령이 자살하는 아픔을 경험했다. 참여정부 말년에는 어땠나. 지지를 철회하고 지지자들 다 돌아서고 노무현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했다.

또 한나라당도 그런 분노를 일으켰고 그 분노의 소산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 아니냐.

이를 알리고 우리 사회에 건전한 담론을 형성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작정하고 쓴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진짜 소를 키우는 사람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의 SNS 같은 것이다. SNS는 중요한 정치 참여 메커니즘인데 가볍고 즉흥적이고 정서적이다. 이것이 분노의 정치와 결합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 전망은.

"야당의 승리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일지 모르지만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고 있다.

안철수 교수는 타이밍을 놓쳤다. 너무 재는 것 같다.

총선에서 야권이 과반수 이상을 점하는 경우 대권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박근혜 위원장이 흔들릴 경우 나쁜 것인지, 새로운 후보가 들어와서 흥행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야당의 경우에도 과반을 넘을 경우, 한'미 FTA 폐기와 국가보안법 문제, 사립학교법이라든지 그런 사안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내느냐에 따라 당운이 흔들릴 수도 있고 대권구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책임지자니 너무 무겁고 안 지자니 지지세력이 흔들리는 딜레마에 빠져 그것이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총선 승리라는 것이 대선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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