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방 끈이 길어도 짧아도 같이 청춘을 메고 들었다

책가방의 어제와 오늘

정부가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책가방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디지털 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태블릿 PC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정부가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책가방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디지털 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태블릿 PC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입학(신학기) 선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책가방이다. 책가방이 입학 선물의 기본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학교생활에서 책가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책가방은 학생들에게 분신과 같은 존재다. 책가방에는 학업에 필요한 교재나 필기구뿐 아니라 손때 묻은 소장품까지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책가방을 잃어버리는 것은 학생들에겐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책가방을 꼭 끼고 다닌다.

시대에 따라 학생들의 모습이 변하듯 책가방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변한 책가방이 없어 천에 책을 싸서 다니던 시기를 넘어 지금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기능성 책가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학기를 맞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책가방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했다.

◆책가방의 변천사

책가방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193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학생들이 들었다는 돼지가죽 가방이 국내 최초의 책가방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특히 돼지가죽 가방이 지금과 같은 책가방 역할을 한 것인지, 아니면 핸드백 역할을 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책가방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시기는 서양의 교육체계가 시행된 일제강점기 이후다. 당시 교육체계는 서구의 것을 따랐지만 학생들의 책가방에는 조선시대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었다. 배움터가 서당에서 학교로 바뀌었지만 책가방은 조선시대 괴나리봇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당시에는 현대식 책가방과 거리가 먼 책보가 책가방 대용으로 널리 사용됐다.

책보의 전통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전쟁으로 서민들의 삶이 파탄 난 상태여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드물었던 당시, 책가방은 대한민국 1%의 전유물일 정도로 귀했다. 대신 대부분의 학생들은 빡빡머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책보를 메고 다녔다. 책보는 걷거나 달리기에 편하도록 허리에 두르거나 어깨에 걸쳐 사선으로 묶는 것이 대세였다. 책보는 1960년대까지 책가방 대용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책보의 시대가 저물고 책가방 시대가 열렸다. 1970, 1980년대 책가방은 한결같이 버튼을 누르거나 돌려 가방을 여는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이 넉넉하지 못해 질보다 양을 중시하던 시대상을 반영하듯 책가방은 수납공간이 넓은 것이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들어 책가방은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책가방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접목되면서 모양과 기능, 소재가 다양해졌다. 1990년대를 발판으로 책가방은 2000년대 획기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전반적으로 책가방의 크기는 작아졌고 질기고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무게가 확 줄었다. 색상도 화려해졌고 노트북'아이패드 등을 담을 수 있도록 수납공간도 다양해졌다. 등에 메는 책가방 대신 여행용 캐리어처럼 바퀴가 달린 책가방이 등장해 한때 유행을 선도했다.

최근에는 어깨와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설계된 기능성 책가방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책가방에 기능성이 더해지면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동시에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기능성 책가방의 가격은 고가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략 9만~14만원대. 이는 일반 책가방에 비해 2~5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아웃도어 열풍도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다. 부산지역 롯데백화점이 올 1월 신학기 책가방 구매패턴을 분석한 결과 아웃도어 브랜드의 매출이 지난해 대비 20~3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스페이스는 40%가 넘는 고신장률을 기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가방이 인기를 끈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학생용 백팩을 경쟁적으로 출시했고 유행에 민감한 10대들 사이에서 아웃도어 책가방이 하나의 패션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캐릭터가 들어간 책가방이 인기다. 초등학생 책가방을 수놓은 캐릭터에도 시대상이 묻어 있다. 1970, 1980년대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 영화는 '태권브이'와 '캔디'였다. 그 영향으로 당시 초등학생 책가방에는 어김없이 태권브이와 캔디 캐릭터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뽀로로' '키티' 등이 태권브이와 캔디를 밀어내고 책가방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았다.

◆책가방에 얽힌 추억

책가방에는 사춘기의 추억이 배어 있다. 그래서 책가방을 보면 빛바랜 사진 같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급식이 시행되고 있어 도시락을 들고 가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는 도시락을 싸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도시락을 두 개 또는 세 개를 싸서 가방에 넣고 등교를 했다.

비급식 세대인 40, 50대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책가방의 추억은 김칫국물 사건이다. 당시 도시락은 지금처럼 밀폐기능이 뛰어나지 못했다. 그냥 뚜껑을 덮는 형태였다. 더욱이 반찬도 김치가 대세였다. 김치를 대체할 반찬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 당시 학생들은 책가방에 도시락을 넣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쏟아지지 않도록 반듯하게 도시락을 넣어도 밀폐기능이 전혀 없는 도시락 탓에 김칫국물이 새기가 일쑤였다. 김칫국물이 새면 책가방뿐 아니라 책에도 뻘건 물이 들었다.

시내버스 여자 차장이 버스를 두드려 '오라이'하며 출발 신호를 보내던 시절,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갈 때 김칫국물이 새면 버스 안은 온통 김치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도 큰 불평이 없었다. 당시 김칫국물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시험을 칠 때는 책가방이 부정행위를 막는 칸막이로 유용하게 사용됐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직사각형 책가방을 책상 가운데 세워 놓고 시험을 쳤다.

지금은 멀쩡한 책가방을 두고 해가 바뀌면 책가방을 또 구매하는 풍요의 시대가 되었지만 책가방 하나 사면 소위 말해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던 시대도 있었다. 당시에는 옆구리 터진 가방을 부둥켜안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요즘 학생들 같으면 창피하다고 등교 거부를 하겠지만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쳐나던 당시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찢어진 책가방을 안고 학교로 향했다.

◆무게로 본 책가방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가방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가벼운 소재가 사용되면서 책가방 자체 무게도 줄었지만 과거에 비해 배우는 과목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2학년 수업시간표에 편성된 교과목의 경우 2009년 12과목에서 10과목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금은 8과목으로 감소했다. 또 김대중 정부 들어 급식이 시행되면서 도시락 무게만큼 책가방 무게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1990년대 중후반 학교마다 사물함이 설치되면서 책가방은 한결 가벼워졌다.

1990년대 이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책가방은 무거운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학생들의 책가방은 교육 당국도 인정할 만큼 무거웠다. 특히 자기 몸무게에 버금가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금 학생들의 책가방과 1970, 1980년대 학생들의 책가방을 비교해 보면 무게가 상당히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애처로웠던 탓이었을까? '책가방 없는 날'이 지정되어 시행되기도 했다. '책가방 없는 날'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덜어주고 주5일 수업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단계 차원에서 1995년 초등학교에 시범적으로 도입된 뒤 중'고교까지 확대됐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로 지정했으며 학생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등교해 유적지'박물관 견학 등 체험학습을 즐겼다. 하지만 '책가방 없는 날'은 3, 4년 정도 시행되다 흐지부지됐다.

◆책가방 없어지는 날이 올까?

책가방의 무게는 앞으로 더 가벼워질 전망이다. 정부가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디지털 교과서 전환 사업에 올해부터 2015년까지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학부모들에게는 학습지와 참고서를 별도로 구입하는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과서로의 전환은 책가방으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 등을 들어 디지털 교과서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또 종이 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디지털 교과서 전환 방침이 발표되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편리성과 기능성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종이 교과서를 통해 감수성과 집중력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너무 기계 문명에 도취돼 인간미를 잃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건은 사교육

사교육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책가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 전환 사업이 훌륭히 이루어지더라도 학생들은 여전히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 학부모 박선정(41'여) 씨는 "책가방 없이 다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꿈만 같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과 책가방 무게를 줄이는 열쇠는 사교육이 쥐고 있다. 사교육을 근절시키든지 아니면 사교육 교재까지 디지털화가 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무거운 책가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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