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우유, 마셔도 될까? 냄새를 맡아보고 살짝 맛을 봐도 별 이상이 없긴 하지만 마음이 영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냉동실에 뒀던 유통기한이 2주일이나 지난 만두 역시 "냉동시켜뒀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괜스레 배가 살살 아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사람의 심리. '유통기한'을 식품 변질 시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오랜 식품 소비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소비기한'(안전유지기한)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 부패, 변질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식품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논의를 지켜보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왜?
◆유통기한제를 소비기한제로 바꾸자?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유통 중인 면류 및 냉동만두 제품을 대상으로 유통기한 만료 후의 품질변화를 확인한 결과, 면류 중 건면은 유통기한 만료 후 50일, 냉동만두는 25일이 경과하는 시점까지 섭취 시 안전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은 2009년 유제품을 시작으로 지난해 면류 및 냉동만두 제품까지 총 11개 품목의 식품에 대해 유통기한 경과 후의 섭취 적정성 연구를 한 결과, 부패'변질까지 걸리는 시간은 유통기한 만료 후 2일에서 70일까지 식품에 따라 다양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에서 설립한 전문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은 "식품은 다양한 원료가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인 만큼 획일적으로 유통기한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장기저장이 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는 '품질유지기한'을, 부패'변질의 우려가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소비기한'(안전유지기한) 제도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현행 유통기한 제도 아래에서 유통기한 경과를 이유로 반품되는 식품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품공업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유통기한 경과 등의 이유로 한해 평균 1.8%가량의 식품이 반품되며, 이를 연간 식품 전체 출하액(2010년 기준 34조원)으로 환산하면 약 6천100억원에 달한다는 것.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식품 유통기한 표시제도의 개선을 관계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며 "소비자들도 온도관리를 제대로 한 식품이라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무조건 버리지 말고 맛'냄새'색 등을 고려해 섭취 가능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정부는 2009년부터 소비기한제 도입을 추진해왔으며, 올해 현행 식품 유통기한 표시제도를 소비기한 표시제도로 바꿀 방침이다.
1985년 도입된 유통기한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으로 고시돼 있다. 그리고 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변질 여부와 관계없이 판매가 금지된다. 법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식품의 제조'가공업자가 제품의 원료, 제조방법, 유통방법 등을 모두 고려해 실험을 진행한 후 설정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보통 식품 회사들은 이 같은 실험으로 얻은 유통기한에 안전계수(0.7)를 적용해 70%로 실제보다 짧게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는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먹는 데 문제가 없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유통기한은 소비자의 '섭취 가능 기간' 혹은 '식품 변질 기한'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부패'변질 상태나 섭취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음식을 폐기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민감성의 차이는 어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도 유통기한이 채 경과하지 않았는데도 식품이 변질되거나 이상이 생겼다는 접수가 꽤 많은 상황에서 사실상 유통기한 연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비기한 제도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 유통기한 관련 상담 775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유통기한이 경과하지 않았음에도 식품이 변질되거나 이상이 생긴 경우가 345건이나 접수됐다. 또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은 사례는 64건이었으며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한 사례도 366건에 달했다. 월별로는 여름철인 7, 8월에 각각 46건과 44건으로 가장 많았고 겨울철인 11, 12월에도 각각 42건과 28건이 접수돼 겨울철이라고 하더라도 식품안전에 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들 역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람에 따라 식품의 이상 여부를 감지하는 감각은 물론, 인체가 이상이 있는 식품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준영(35'여) 씨는 "예민한 후각이나 미각을 가진 이는 음식에 이상이 조금만 있어도 알아채지만, 둔감한 사람은 미처 모르고 그냥 먹기도 하는데 그런 차이는 어떻게 할거냐"며 "워킹맘이다 보니 아이들끼리 냉장고에서 음식물을 꺼내먹을 경우도 많은데 사실상 유통기한이 연장되는 소비기한제 도입이라니 정말 불안하다"고 푸념했다.
강현옥(42) 씨 역시 "가끔 식탁에 둘러앉아 식구들끼리도 맛이 상했네 괜찮네 의견차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으냐"며 "가정에서 이상 징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먹을 만한 것은 먹으라는 한국소비자원의 발표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역시 의견을 같이한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현재 우리나라 유통업체의 냉장 또는 냉동 환경은 한국소비자원의 실험환경과 다를 수 있으므로 한국소비자원의 실험내용을 일반화해 유통기한표시제를 개정할 경우 오히려 소비자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불러올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애매한 유통기한제
사실 현행 유통기한 제도라는 것이 좀 '애매모호한' 면이 있긴 하다. 제과점의 빵은 당일 제조'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유통기한은 당일로 표기된다. 하지만 대형마트 내 매장 등 자정을 넘겨 영업 하는 제과점들도 상당수인 현실에서 새벽 1시에 빵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이곳에서 판매되는 빵들은 전날 제조돼 회수'폐기조치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모호한 면이 있다 보니 제과점에서는 자정이 가까워지는 밤늦은 시간이 되면 할인판매를 통해 재고 물량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한 제과점 직원은 "물량이 많이 남았을 때는 20~30% 할인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정상가로 판매하는 등 그날그날 상황이 다르다"며 "간혹 유통기한 표기를 문제 삼는 까다로운 고객도 있긴 하지만 유통기한은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기간을 고려해 그 기간만큼 앞당겨 정하기 때문에 날짜가 지나도 2, 3일까지는 먹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식품제조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식품을 기탁받아 이를 소외계층에 지원하는 식품지원 복지서비스단체인 '푸드뱅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통기한 조정 논의가 오히려 반갑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기부받을 수 없고, 또 이를 가져가는 사람들 역시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 달서구 본동푸드뱅크 관계자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이 버려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봐서도 큰 낭비"라며 "소비기한제가 도입되면 푸드뱅크 기부가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음식 전처리 공정과 용기, 제품을 담는 방식(충전 방식)이 점차 진화하면서 유통기한이 훨씬 길어진 제품들도 상당수다. 보통 우유는 유통기한이 일주일가량에 불과한 반면, 살균과정을 통해 활성균을 배제한 우유 제품은 유통기한이 6개월에 달하기도 한다는 것. 또 같은 맥주라고 하더라도 병맥주와 캔맥주는 통상적인 음용 권장 기한이 1년가량인 반면, 페트병 맥주의 유통기한은 6개월에 그치는 등 용기에 따른 차이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식품 업체들은 무균 충전이나, 유리병의 보존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빛을 차단하고 휴대성을 동시에 갖춘 무균 종이 패키지, 기존 캔 용기의 장점을 살리면서 뚜껑을 다시 닫아 내용물을 보관할 수 있는 리캡 기능이 있는 알루미늄 재질의 NB(New Bottle)캔 등의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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