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의 검을 받아라… 조선세법 연무회

죽도 치기 아니라 칼 베기, 현존하는 最古 동양 검법…회원 적지만 자부심

조선세법 연무회 회원들이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대구를 찾은 내
조선세법 연무회 회원들이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대구를 찾은 내'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선세법 시연을 하고 있다. 검도교실 선해재 제공

지난달 29일 오후 7시 검도교실 선해재(대구 수성구 신매동)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도복을 갈아입고 목검을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 순서대로 대형거울 앞에 서서 칼끝에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시킨 채 동작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정적과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이들은 하나의 세(勢'동작)가 끝날 때마다 칼을 꽂고 다시 칼을 뽑아 뿌리는 동작을 이어갔다.

이들은 검법 동호회 '조선세법 연무회' 회원들로,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대구를 찾은 내'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전통 검법을 알리자'는데 뜻을 모으고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 후에도 이들은 매주 수요일 등 틈틈이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시연하면서 조선세법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홍석민(3단)'김사현'장여진(이상 대구가톨릭대)'조준영(경일대) 씨 등 대학생 4명과 김석곤(오성고), 권구(안심중) 군 등 고교'중학생 각 1명, 일반인 노진식(3단), 최재훈(3단), 김은주(주부) 씨 등 총 9명이다. 비록 다른 스포츠 동호회에 비해 동호회원 수는 많지 않지만 이들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검법을 한다는 자부심만은 남다르다.

김사현(23) 씨는 "조선세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마음 맞는 학생 검도 수련생들이 모여 조선세법 동호회를 만들게 됐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우리에겐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검법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며 "이런 훌륭한 검법이 우리에게 있다는데 놀랐고 이런 동양 최고 검법을 수련하고 시연하는 그 앞에 설 수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조준영(25) 씨는 "취미로 검도를 하고 있어 수련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이는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죽도로 쳐 겨루는 검도와 칼로 베는 검법은 많이 달랐다. 특히 납도(칼을 꽂는 동작)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렵고 위험한 검법의 하이라이트였다"며 "처음엔 힘들고 낯설었지만 우리나라 검법이어서 그런지 왠지 친숙하고 다른 것보다 더 몸에 맞고 잘 익혀지는 것 같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은 이런 자부심으로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시연을 위해 7, 8월 여름 두 달간 주말도 반납하고 매일 3시간씩 '검'과 싸움하며 맹훈련한 뒤 8월 27일부터 이틀간 둔산동 옻골, 9월 2일엔 서상돈 고택 앞마당에서 내'외국인을 초청해 첫 시연을 했다. 또 1일 3'1절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3'1절 기념 제31회 대구검도회장기대회에서 조선세법 시연을 했으며, 앞으로 세계학생축제 등 국내외 각종 행사에 참가해 조선세법을 알릴 계획이다.

김 씨는 "검도인들 앞에서 하는 시연이라 더 부담스러웠지만 일반인은 물론 검도인들에게도 생소한 검법을 시연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고, 조 씨는 "3'1절 검도대회 시연을 시발점으로 다른 검도 대회나 각종 전통 행사 등 더 많고 큰 무대에서 자랑스러운 조선세법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학생이어서 고정적인 시연을 하기는 힘들지만 의미 있는 행사 등 비정기적으로 훈련 및 시연하며 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비영리법인인 한국인성교육예절원, 대학 등과 연계해 행사 때 조선세법 시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다. 특히 조선세법이 과격하지 않은 만큼 노인대학, 노인회 모임 등을 중심으로 보급해 어르신들의 호신 및 건강 수련 증진에 도움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연무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은미 사범(검도 6단)은 "노인, 여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선세법을 보급하는데 앞장서 조선세법 연무단에 실버연무회, 여성연무회, 학생연무회를 만들어 이들의 건강과 호신을 돕고 전통문화도 계승 발전시키고 싶다"며 "나아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연은 물론 보급에 힘을 쏟아 외국인 연무단도 만드는 등 세계에 널리 알려 한류 바람을 더욱 강하게 일으키는 야무진 꿈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조선세법=한국 고유의 17세기 조선시대 검법으로, 문헌 기록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양의 검법이다. 조선세법은 1621년 명나라의 모원의(茅元儀)가 쓴 '무비지(武備志)' 권 86에 유일하게 도보를 갖춘 검법으로 실려 있다. 무비지는 '기효신서'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서다.

모원의는 무비지에서 '근자에 어떤 사람이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세법이 갖춰져 있어 진실로 중국에서 잃은 것을 서방에서 구한 것이 서방의 등운이나 일본의 상서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무비지'와 '무예도보통지'에는 참고로 할 만한 그림이 부족해 지난해 대한검도회가 '조선세법도'(12세(勢))를 복원했는데, 대한검도회 수석부회장인 범사 8단 이종림 선생 등이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조선세법은 안법(眼法), 격법(擊法), 세법(洗法), 자법(刺法), 격법(格法) 등 그 구성이 특출해 당시로서는 한'중'일을 통틀어 비교 우위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법은 '눈싸움'을 말하고, 격법(擊法)은 '치는 법'. 세법은 '베는 법', 자법은 '찌르는 법', 격법(格法)은 '치는 형태'를 의미한다.

격법(擊法)은 치는 방향에 따라 표두격(위에서 아래도 내려치는 것), 과좌격(왼쪽에서 걸려 치는 것), 과우격(오른쪽에서 걸쳐 치는 것), 익좌격(왼쪽에서 후려치는 것), 익우격(오른쪽에서 후려치는 것) 등 다섯가지로 분류된다.

자법 역시 역린자(목을 찌르는 것), 탄복자(배를 찌르는 것), 쌍명자(명치를 찌르는 것), 좌협자(왼쪽을 찌르는 것), 우협자(오른쪽을 찌르는 것) 등 방향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격법(格法)에는 거정격, 선풍격, 어거격 등 세 가지 형태가 있고, 세법도 봉두세(내려 베기), 호혈세(옆으로 베기), 등교세(올려 베기)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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