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봄비(문정)

어디에 묶어놓았던 밧줄인가

어디로 올라가던 밧줄인가

어느 높이쯤에서 끊어져 떨어지는가

아스라한가

견딜 만한 허공인가

누가 온다면 마중 나갈 만한 거리였던가

이번에는

무서움도 없이 난간도 없이 가지 끝으로 목련꽃을 피워놓고

두근거림도 부끄러움도 없이 그늘을 밀고 진달래꽃을

라일락꽃을 피워놓고

밧줄도 사라진 공중으로

두 눈 감고

기다랗게

만져질 향을 걸어놓고

 

잡고 올라가

선반 위에 곱게 모셔 둔 불생불멸의 경전 같은

사랑이 있다는 듯

꽃다발을 등에 지고 올라가,

다문화 문제를 서정적으로 풀어낸 등단작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문정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에게 봄은 이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꿈꾸는 자의 계절이네요.

그래서 봄비는 하늘을 향해 오르려다 도중에 끊긴 밧줄입니다. 이쯤에서 포기할 수는 없겠지요. 다시 향(아지랑이겠지요)을 걸어놓고 이번에는 꽃다발을 등에 지고 봄이 올라갑니다.

이런 노력이 부질없다 하진 않겠지요. '하려고 몸부림치다 쓰러진 자를, 나는 사랑한다'고 했던 이가 니체였던가요. 우리는 이 때문에 봄이 되면 그리움과 안쓰러움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 것인가 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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