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북한 사이의 관계가 그러하므로, 우리 지도자들은 대북한 정책을 두고 고심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서 중요한 요소다. 이후의 대북한 정책은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에 바탕을 둘 터이므로, 그것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물려받은 대북한 정책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햇볕 정책'이었다. 본질적으로 유화 정책이었으므로, '햇볕 정책'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유화 정책은 위협하는 상대의 입맛을 돋우어 점점 큰 뇌물과 양보를 강요받을 따름이다.
평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유화 정책이 약자가 품은 두려움에서 나오므로, 공격적인 상대는 약자가 두려움을 늘 생생하게 느끼도록 자신의 포악함을 과시한다. 마피아가 주기적으로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시체를 거리에 버려서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도록 하는 수법과 같다. 실제로, '서해 교전'은 김대중 정권 아래서 나왔다.
그러나 한번 유화 정책이 들어서면, 그것을 뜯어내기 어렵다. 상대는 무력을 쓰겠다고 나오고 시민들은 두려워서 그냥 뇌물을 바치면서 살자고 아우성을 친다. 어느 사회에서나 시민들은 당장의 편리만을 좇으므로, 유화 정책은 인기가 높다.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에게 굴복하고 돌아온 네빌 체임벌린은 영국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게다가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다. 정상적 외교가 애초에 불가능한 상대다. 무슨 협정도 무슨 선언도 무슨 국제 규범도 그들의 행태를 인도하거나 규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화 정책으로 북한의 행태에 어떤 제약을 주려는 시도는 그른 가정에 바탕을 두었고, 당연히 남북한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두 좌파 정권들이 북한 정권에 보낸 뇌물이 결국 핵무기의 개발로 보답되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유창하게 말해준다.
이 대통령은 유화 정책의 이런 정책적 경직성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남북한 사이의 관계 설정에서 주도권을 북한에 넘긴 좌파 정권들의 '햇볕 정책'을 벗어나 합리적인 남북한 관계를 설정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정책은 당연히 북한의 거센 반발을 만났고 유화 정책을 지지하는 친북한 세력의 비난을 받았고 북한과 대화하라는 시민들의 압력을 불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런 어려움을 잘 견디면서 자신의 정책을 지켰다. 사악한 체제를 이끄는 북한 지도자에게 뇌물을 바치고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 정상회담을 구걸한 전임자들과는 달리,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큰 정치적 자산을 안겨줄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않았다.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 문제에서 국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선뜻 버리는 애국자의 면모를 보였던 그는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애국자의 면모를 다시 보인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가의 경험을 살려, 비영합경기(non-zero-sum game)의 성격을 지닌 남북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흥정들에서 결코 북한에 밀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유화 정책의 해독들은 많이 씻어졌다.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온 북한의 조문 사절이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막판에 이 대통령의 면담을 허락받고서 감지덕지한 모습에서 우리는 '햇볕 정책'의 종식에서 나온 '금단 현상'이 끝났음을 확인했다.
덕분에 이제 남북한 사이에 비교적 대칭적인 관계가 설정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우리 정부로선 정책적 유연성을 되찾은 것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대북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북한은 우리와의 교섭을 마다하고 대신 미국과의 협상에 매달린다. 그러니 서둘러 북한과 대화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침 선거 철이라, 그런 주장들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잘못된 처방이다.
북한은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무도한 공격을 통해서 정책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고, 미국과의 교섭을 그런 후퇴의 통로로 삼는 것이다.
우리로선 답답할 것이 없다. 소외되었다고 느낄 이유도 없다. 미국이 우리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과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실은 그런 느긋한 태도가 북한의 태도를 가장 빨리 바꾸는 길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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