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앞으로 정치는 누가 하지?

며칠 전 둘째 녀석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연히 그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졸업식 날, 학교에서 받아온 졸업 앨범을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0여 명에 이르는 학생 가운데 장래 희망을 정치인이라고 적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대구의 정치 1번지'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우선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기대감에, 권력은 좋은 것이란 '주입식 교육' 때문에 대통령, 국회의원이 되겠다던 친구가 넘쳐났던 추억 덕분이다. 얼마나 요즘 어른들이 못나게 보였으면 새싹들이 정치를 외면할까? 혹 학교나 가정에서 '정치인은 나쁜 사람'이라고만 배운 건 아닐까? 앞으로 정치는 누가 하지?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공천 신청 기한까지 연장한 새누리당의 궁색한 처지가 오버랩됐다. 아무도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중앙당 입장에서 볼 땐 괜찮은 후보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번 주 후반에 접수하는 비례대표 공모에서도 새누리당의 인물난은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지역에서 열심히 표밭을 갈아온 예비후보 입장에선 분통을 터트릴 만한 일이지만.

정치는 한 국가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과(功過)를 떠나 대한민국호(號)가 지금껏 거센 외풍에도 가라앉지 않고 순항해온 것도 지도자를 그럭저럭 잘 뽑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선거판을 뒤덮고 있는 것은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뿐이다.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을 허용해온 대구경북도 예외는 아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대권주자로서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정권을 교체해서라도, 다수당을 바꿔서라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절박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차악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자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새누리당 핵심 요직에 있었던 한 국회의원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라는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데다 국회의원 당선을 과거만큼 영예롭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경계할 일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들이 '정치 진흙탕'에 발을 들이지 않고 좀 더 생산적인 분야에 매진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신 우리 사회의 '유리 천장'에 가로막혔던 소외계층이 국회에 입성,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공천은 아쉽기만 하다. 우리와 닮은, 그러나 남다른 '감동 인물'을 찾아내지도 못했을뿐더러 제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읽히지 않아서다.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반짝 쇼'로만 끝난다면 박근혜 위원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신뢰'에도 치명적인 위기가 예상된다. '감동 인물'이 이 나라를 이끌 자질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무원칙'무감동'무쇄신'이란 비판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조만간 여야 각 당의 공천이 최종 확정될 예정이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도 지켜야 할 것은 있다. 처신을 가볍게 해선 안 될 일이다. 중국 옛 이야기에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있다. 천리마도 백락처럼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석을 몰라 준다'는 억울함에 훗날까지 망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야 될까.

아들에게 왜 정치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그럴듯했다. "정치인 되면 칭찬은 못 받고 욕만 먹잖아요. 심지어는 자살도 하고…." 욕 대신 칭찬만 받는 국회의원이 이 봄에 탄생하길 기원한다.

이상헌/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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