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쉽다?" "어렵다!" 그래도 교과서에 길이 있다

초교생 새 학기 교과서 활용법

'문제집 말고 교과서와 먼저 친해지세요.' 교과서의 수준, 분량을 둘러싼 불만이 많지만 교사들은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데 교과서만 한 자료가 없다고 충고한다. 사진은 올해 초등학생들이 배우게 될 교과서.

'교과서는 공부의 첫걸음.'

교과서를 애물단지로 여기는 학부모들이 많다. 학생들도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다 보면 교과서 내용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아 교과서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새 학년 교과서는 이미 받았지만 학교 수업 때만 펼칠 뿐 학원 교재나 시중 문제집 풀이에 열중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과서가 모든 공부의 바탕"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초등학교 경우 전 학년 교과서가 체계적으로 연계돼 있어 교과서 속 내용을 충분히 익혀두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학부모를 위한 교과서 활용법에 대해 알아봤다.

◆교과서는 천덕꾸러기?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박지선(41'여) 씨는 얼마 전 새 학년 사회 교과서를 펼쳐 보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한꺼번에 배우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학습 의욕을 높이기는커녕 역사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암기하는 걸 힘들어 하는데 이처럼 많은 내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들이 사회 과목을 싫어하는 게 이해가 됩니다."

새 학기 자녀들의 교과서를 본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의견은 천차만별이다. 너무 분량이 많고 어렵다는 의견부터 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비해 수준이 뒤처진다는 불평도 나온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교과서가 많은 학부모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점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김수현(39'여) 씨는 봄방학 동안 2학년 딸에게 미리 교과서(수학 익힘책)를 훑어보게 했는데 딸이 묻는 수학 문제를 쉽게 해결해주지 못해 진땀을 뺐다. '3□□-□□7-4□□-□57-□□□'의 □안에 들어갈 숫자를 채우는데 가장 적은 수부터 70씩 뛰어 세기를 한 것이라는 힌트가 있는 문제였다.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문제를 풀었지만 막상 설명해 주려니 쉽지가 않더군요. 세자릿수 뺄셈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그 과정은 3학년 때 배우는 거잖아요. 이러니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죠."

교사 중에도 교과서 내용이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한 초교 교사는 "올해 1학년 교과서만 해도 국어 3권, 수학 2권, 바른생활 2권, 슬기로운생활 1권, 즐거운생활 1권 등 9권이나 된다. 별 설명 없이 그림만 잔뜩 늘어놓아 내용도 너무 추상적"이라며 "걸음마를 떼는 아이에게 얼른 뛰라고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하반기 전국의 초등교사 411명을 대상으로 교과서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1.8%가 교과서의 양이 많고 내용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가르치기 힘든 교과를 묻는 문항에는 사회(51.6%), 수학(32.8%), 도덕(30.5%), 국어(29.8%), 과학(20.8) 순으로 답했다.

반면 학부모가 교과서의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잖다. 자녀 학습에 욕심을 내는 학부모 경우 새 학기에 배울 교과서를 찬찬히 읽기보다 관련 과목 문제집을 푸는 것으로 선행학습을 대신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최모(38'여) 씨는 "주요 과목인 영어와 수학은 일찌감치 깊이 있는 내용을 익히며 다른 학생보다 앞서 나가야 중'고교생이 됐을 때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으니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발달 단계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녀를 밀어붙이다 보면 공부 자체에 대한 흥미만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원 등 사교육 시장에서 내놓는 문제집은 심화학습 등을 명목으로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고, 이를 수준 높은 교육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학남초등학교 김학조 교사는 "1학년 때 음표를 보여주고 '도레미' 등 계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문제집에서나 볼 수 있을 뿐 교과서에는 4학년 때에나 나오는데 학부모들이 문제집 풀이에만 매달리는 게 안타깝다"며 "학부모가 조급증을 버리고 자녀가 교과서 내용을 소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교과서가 최고…학부모의 교과서 활용 노하우

교과서를 둘러싼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기초를 다지기에는 교과서만 한 자료가 없다고 강조한다. 교과서의 목차와 구성 등을 미리 살펴보면 지식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자녀와 함께 교과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문이 길고 어려워진다. 올해 교과서에는 수록되던 기존 문학작품들 외에 '해리 포터'와 같은 최근 소설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낯선 지문을 접할 경우 초등학생들은 어려움을 느끼게 마련. 교과서 뒤편에 지문의 출처가 표시돼 있어 미리 챙겨 읽어두면 도움이 된다.

수학은 선행학습이 가장 많은 과목. 하지만 지난 학년 때 소화하는 개념을 제대로 익혀뒀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자녀가 지난 학년 때 배운 수학 개념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다시 익히도록 해야 한다. 학년별로 개념이 연계돼 있어 배운 내용을 정확히 모를 경우 새 학년에서 공부할 때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삼영초등학교 변수정 교사는 "국어 교과서를 펼 때 저학년 경우 소리 내서 많이 읽도록 하고, 고학년은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사전을 꺼내들기보다 문맥을 통해 의미를 유추해보도록 하는 것이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수학은 이전 학년 교과서를 보면서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두지 않으면 새 학년 수업 때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우는 과목이다. 교과서 속 목차부터 큰 제목 순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면 전체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처음 접하는 5학년은 특히 교과서의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자녀와 함께 교과서 속 인물, 주요 사건 간 순서와 연계성 등에 대해 살펴보자. 무조건 내용을 외우게 하는 것은 금물이다.

주말 시간을 활용해 교과서 속 유적지와 문화재 등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억도 오래 남는다. 교과서 속 단어는 정확히 알아둬야 한다. 가령 6학년 사회에 나오는 '반도'(교과서상에는 삼면이 바다로 열려 있는 지형이라고 정의)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3, 4학년부터 배우는 과학은 실험과 탐구활동이 중심. 교과서에는 실험과정만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고 익혀야 할 과학개념은 설명하지 않고 있어 책을 펼쳤을 때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정에선 실험 결과보다 왜 이 실험을 하는지 목적을 알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남초등학교 김미옥 교사는 "사회와 과학 모두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교과서 속 그림과 사진을 보며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함께 검색해 보는 것이 좋다"며 "초등학생들은 글을 읽는 것보다 들어서 이해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에 자녀와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기본 개념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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