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지켜보는 마음

누구나 흰 도화지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도화지를 채워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에 한참 동안 망설여야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 역시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찌감치 그리고 싶은 것을 정해서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아이, 처음 선을 긋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리는 아이, 일단 아무거나 그려보는 아이…. 그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아이를 지켜보는 일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이를 지켜본다는 말은 단순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이다. 재촉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육아에 있어서는 조금씩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가 빛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이 칭찬해주기를 원하고, 다른 아이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수학을 못해도 우리 아이는 수학 영재였으면 좋겠고 내 발음이 형편없어도 우리 아이는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당연한 욕심.

그러나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비워 아이를 제대로 한 번 바라보라. 영재도 천재도 아닌 우리 아이가, 그 속에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도화지를 앞에 두고 있다. 어쩌면 그 존재 자체가 도화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그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다.

아이의 첫 그림을 떠올려보자. 서투르지만 정성껏 그려낸 그 대단할 것 없는 그림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주며 냉장고에 붙이고 벽에 걸었던 순간이 분명 기억의 한 귀퉁이에 있을 것이다. 그때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의 그림을 봐주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무엇을 그린 건지 알기 힘든 그림에도 관심을 쏟으며 "이건 뭘 그린 거니?" 하고 물어봐 주는 애정이야말로 아이의 상상력과 가능성, 나아가 자신감까지 키워주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의 그림을 대신 그려줄 수 없다.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아이와의 미술 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이다. 흠 하나 없는 그림보다는 정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자 부모가 걸어야 할 바른길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육아란 부모가 풀어야 할 평생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빨리 큰다. 그러나 더디게 인간이 된다.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완벽한 아이보다는 사소한 것에도 행복함을 느낄 줄 아는 아이가 더 인간답다. 많이 고민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지라도 아이가 스스로 자기 앞의 도화지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자. 그동안의 시간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김 나 운 유아교육전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