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김주연 씨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는데 '육신의 병'까지…

김주연 씨에게 과거는 칠흙같은 어둠이다. 자유도 없이 몸과 마음을 학대당했던 그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요즘도 밤잠을 설친다.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는 주연 씨가 이겨야 할 대상이 하나 늘었다. 바로 백혈병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김주연 씨에게 과거는 칠흙같은 어둠이다. 자유도 없이 몸과 마음을 학대당했던 그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요즘도 밤잠을 설친다.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는 주연 씨가 이겨야 할 대상이 하나 늘었다. 바로 백혈병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6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병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인 김주연(가명'34) 씨는 말이 없었다. 기자가 질문을 하면 짧게 대답한 뒤 멍하게 창 밖을 바라봤다. 대신 어머니 오영숙(가명'54) 씨가 딸 대신 답했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었던 주연 씨는 병에 걸린 뒤 더 말수가 적어졌다. 육신의 병만큼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과거의 아픈 기억이다.

◆ 잊고 싶은 과거

주연 씨는 한때 전국을 떠돌았다. 서울만 빼고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아픈 상처와 기억으로 가득 찬 전라도 광주는 주연 씨가 절대 다시 찾지 않을 도시다. 그는 친구가 좋았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친구들과 밖에서 더 자주 어울렸다. 그가 친구를 찾게 된 것은 외로움 탓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가슴 속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친구를 너무 믿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주연 씨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은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보증 좀 서줘." 친구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1천만원 넘게 빚을 졌다. 만약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빚을 자신이 대신 갚겠다는 내용의 보증서에 사인을 했다. 친구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증서에 사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친구가 종적을 감춘 뒤 '삼촌'들이 찾아와 그를 유흥업소로 끌고갔다.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었다. 전화는 물론 컴퓨터도 사용할 수 없었고 목욕을 갈 때도 감시받으며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곳을 벗어나려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남자들의 손에 끌려왔고 무자비한 폭력을 견뎌야 했다. "어떤 여자는 도망치다가 걸려서 맞아 죽었어요. 이곳은 절대 도망칠 수 없는 곳이구나, 빨리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빚은 줄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났다.

2005년 11월, 그가 갇혀 지낸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광주 광산구 송정동 유흥주점 밀집가에서 큰 불이 나 유흥업소 여자 종업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주연 씨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사고 소식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왔고 여성단체도 유흥업소에 감금된 여성들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해 가을 주연 씨는 3년 만에 엄마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다.

◆ 마음의 병이 덧나다

힘들게 만난 딸은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고향인 대구로 온 주연 씨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고 불을 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했다. 오 씨는 딸을 데리고 상담센터를 찾았다. "애가 잠도 못 자고 무서워하니까 정신과 치료라도 받으면 낫지 않을까 해서 이곳저곳 참 많이 다녔어요.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며 시간이 지나니 주연이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어요." 마음의 병이 조금 나았다고 생각할 무렵 더 큰 병이 찾아왔다. "엄마, 자꾸 속이 미식거려. 머리도 아프고." 두통약만 먹던 주연 씨가 쓰러졌고 2006년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는 육신의 병과 싸움이 시작됐다. 항암제를 먹으며 1년 넘게 치료했지만 주연 씨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그때 쓴 병원비만 해도 수천만원이 넘었다. 면역력이 자꾸 떨어져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병원에서도 "치료 방법이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부모 마음은 어쩔 수 없잖아요. 병원에서 포기하라고 한다고 포기가 됩니까." 오 씨는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백혈병에 좋다는 한약을 지어 딸에게 먹였다. 양약이 안 된다면 한방으로라도 딸을 살리고 싶었다. 결국 엄마의 간절함이 통했다. 1년 넘게 한약을 먹자 기적처럼 딸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됐다. "병원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몸이 좋아졌냐며 신기해하더라고요. 이제 내 딸이 살았구나…. " 2년간 잘 버텼지만 암은 끈질겼다. 2009년 중순 병이 악화돼 주연 씨는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주연 씨에게 골수이식을 권했다. 남동생(33)이 주연 씨와 골수 조직이 일치한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 현재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술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수술비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주연 씨는 수술 승인이 난다고 하더라도 800만원 수술비를 부담해야 한다. 지금 당장 입원비와 약값 등 치료비 200만원을 낼 돈이 없어 퇴원을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수술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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