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작업의 정석'을 연출한 한국영화계의 중견 오기환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곧 중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국내에서 진행해야 할 업무 한 가지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무슨 일로 들어가느냐고 물어 보니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 '선물'이 중국에서 다시 제작되는데 연출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멜로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이정재가 연기한 무명 개그맨 '용기'는 성공의 길이 멀기만 하고 용기의 아내인 '정연'(이영애)은 자신의 병을 숨기고 그런 남편의 성공을 위해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고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펼쳐진다. 아내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무대에 선 남편은 웃음을 주기 위해 연기하고 아내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영화의 내용이 지금 새로운 세대의 젊은 관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성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도 영화의 내용은 신파에 가까웠다. 급변하는 사회는 밀레니엄을 막 지나 '디지털혁명'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점은 이에 대한 저항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역시 만만치 않았던 분위기였다. 이런 모든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 영화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반대로 2005년에 내놓은 트렌디한 작품 손예진, 송일국 주연의 '작업의 정석'을 5년 먼저 선보였다면 25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의 공감을 얻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판 '선물'이 더 기다려진다. 원작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중국의 관객들이 이 이야기의 감수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관 입장료가 만원을 훌쩍 넘어 우리나라보다 비싸고 흥행작의 관객 수가 보통 1억 명이라는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이 우리 원작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를 관람할지 수치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의 명장면이 이번에도 잘 구현되었으면 좋겠다고 오기환 감독에게 말하자 대뜸 중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형식의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없다고 한다. 당황스럽지만 새로 각색될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이 어떤 직업일지 역시 기대하게 만든다.
데뷔작을 다시 연출하는 중견감독의 마음을 필자가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존경하는 선배 감독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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