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동은 한때 대구 문인 묵객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전후 유흥 경기의 진원지였다. 대구 제일의 '거나한 소비'와 인파가 몰리는 골목이었지만, 이제는 찾는 이 드문 늙은 여배우처럼 쓸쓸히 황혼길을 걷고 있는 향촌동을 보노라면 세월의 무상함과 더불어 가버린 사람들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워진다."
오래전 매일신문에 '대구 이야기'를 연재해 화제를 모았던 작가 정영진이 밝힌 향촌동(香村洞)에 대한 소감이다. 그렇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의 '시내'는 단연 향촌동이었다.
경북도청을 비롯한 관공서와 은행, 극장, 역 등이 주변에 있었고, 여관과 요릿집 및 술집이 즐비한 밤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향촌동은 6'25전쟁이 터지고 대구로 내려온 피란 문인들이 합세하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술과 낭만이 무르익는 문화예술의 거리로 명성을 날린 것이다.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인 예술가들의 기항지였던 향촌동의 풍경도 달라졌다. 중앙로 건너편 교동으로 서민 상권이 옮겨가고, 도청이 산격동으로 이동하면서 향촌동은 '시내'로서의 자존심을 잃어갔다. 1970, 8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노인들의 발걸음만 이따금씩 이어지는 퇴락한 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올봄을 맞아 이 향촌동에 새로운 관심과 변화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어 사뭇 반가운 마음이다. 현대백화점 대구점과 (사)시간과공간연구소의 공동 주최로 진행되는 향촌동 이야기 강좌가 그렇고, 향촌동 입구 옛 상업은행 자리에 추진하고 있는 향촌동전후문화재현관과 대구문학관 건립이 그렇다.
향촌동이 어떤 곳인가. 1950년대를 풍미했던 문인들이 드나들던 술집과 다방 건물이 아직 남아있고, 그들이 뿌려놓은 낭만과 일화가 스민 좁은 골목길도 여전하지 않은가. 피란 문인들과 향토의 문화예술인들이 전쟁의 후유증을, 실향과 이산의 아픔을, 삶의 고뇌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꿈을 한 잔 술로 달래던 한국문단사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대구와 한국의 삶 한가운데를 껴안았던 향촌동 골목을 기억하고 되살리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때마침 대구 도심 역사문화 골목투어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향촌동 '전쟁문학관' 건립을 계기로 향촌동 골목도 테마가 있는 거리로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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