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하여 생활공간으로 삼고 그 안에 정자를 지어 나무와 꽃을 심어 주변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정원처럼 꾸며 놓은 곳을 원림(園林)이라고 한다. 이런 곳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은 호남 보길도의 세연정, 담양의 소쇄원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호남의 이런 원림문화와 대조적으로 영남지방에는 밀양의 영남루나 진주의 촉석루, 경주의 독락당, 예천의 초간정 등 누정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지형적 특성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선비들의 학풍 때문인지 깊이 연구한 자료가 없다.
그런데 의외로 대구 인근에 아름다운 원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앞에 있는 심원정(心遠亭)으로 창녕인 기헌(寄軒) 조병선(曺秉善'1873~1956)이 경영했던 곳이다. 공은 만년에 이곳에 들어와 주변을 다듬고 나무를 심어 원림을 조성하면서 그 자초지종을 수석기(水石記, 번역'조수학)로 남겼는데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금년(1937) 봄 아들 규섭에게 정자를 짓게 하여 가을에 완수했다. 편액을 심원정이라 했는데 도연명의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이란 말에서 취한 것으로 '그윽이 살면서 제 뜻을 터득했다'란 뜻이다.
정각의 집터는 그 모양을 따라 귀암(龜巖)이라 하였고, 앞 절벽은 세 굽이가 졌는데 첫 굽이인 성석대(成石臺)에는 앉아서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양망대(兩忘臺)라 했으니 조대사(釣臺詞)에 있는 말(두 가지 번뇌를 다 잊음)이다. 둘째 굽이에는 은병(隱屛)이라 새겼으니 주자의 무이구곡 제5봉 이름에서 취한 것으로 은거병식(隱居屛息'은거하면서 소리를 죽이고 숨을 쉼)이라는 뜻이다. 셋째 굽이는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논에 물을 대는 봇물을 끌어와서 폭포를 만들고 은폭(隱瀑)이라고 새겼다.
정자 앞에 넓적한 바위가 누워 있어 반듯하게 하고 성석(醒石)이라 새겼으니 졸음이 올 때면 잠을 깨운다는 뜻이다. 동쪽 움푹진 곳에 터진 쪽을 막고 물을 끌어와서 연을 심고 군자소(君子沼)라 새겼으니 주렴계의 말에서 취한 것이다. 물이 넘치는 곳에 구덩이를 막아서 목욕탕을 만들고 탕지(湯池)라고 새겼다. 연못 위쪽에 구기자를 심고 돌을 세워서 기천(杞泉)이라 새겼다. 그 위에 온갖 화훼를 심고 돌을 세워 방원(芳園)이라 새겼다.
이곳에는 돌이 많아서 오랫동안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 있는데 그중 빈곳에는 근처 밭에서 버린 돌 자갈이 쌓여서 흙을 덮고 좋은 나무를 심었는데 느티나무가 많으므로 괴강(槐岡)이라 새겼다. 괴강 옆 통로 양옆에 돌을 세우고 석비(石扉'돌로 된 사립문)라고 새겼다. 그 옆에 등 넝쿨을 심고 돌을 세워 동취병(東翠屛)이라고 새겼다.
괴강 아래에 도랑을 파서 물이 돌아 흐르게 하고 양 입구에 돌을 걸쳐서 다리를 만들고 각각 돌을 세워 천광(天光) 및 운영(雲影'주자의 도통 시)교라고 했는데 여기를 지나 방원으로 통한다. 방원과 연못 동쪽에는 길게 둑을 쌓아 보호하고 좌우에 버들을 심고 유제(柳堤)라고 새겼다.
유제의 동쪽에 우뚝 솟은 바위는 냇물을 감당해 내고 있으므로 지주(砥柱'예부터 절개를 상징함)라 새겼다. 남쪽에 반석이 있는데 동반(東槃)이라 새겼으니 정자 동쪽에 있는 고반(考槃'은퇴한 후에 풍류를 즐기는 일)이란 뜻이다. 반석 밖에 큰 돌이 수중에 누워 있는데 그 위에 몇 사람이 앉을 수 있고 냇물이 불어나면 잠기곤 하므로 반타(槃'반석에 물이 흐름)라고 새겼다.
정자의 서쪽에는 별개의 바위가 있는데 그 높이가 남쪽 벼랑보다 훨씬 낮으나 셋째 굽이의 은폭과 마주하고 있는데 이것을 서대(西臺)라고 새겼다. 그 위편에 오솔길이 있는데 정자로 들어오는 길이다. 나무를 심고 넝쿨로 덮고 서취병(西翠屛)이라 했다. 서대의 서편에 석벽이 있는데 수구암(水口巖)이라 새겼다. 이름을 붙이니 모든 곳에 다 절구(絶句) 한 수씩을 읊어 기록했는데 정자 안에서 5수, 정자 밖에서 20수를 얻었다.
정자 이름 심원(心遠)은 도연명(陶淵明)의 '사람들 사는 틈에 초가집 짓고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心)이 머니(遠) 머무는 땅 또한 자연히 외져서이리'(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즉 마음을 멀리 두면 비록 소란한 가운데 있더라도 여유롭고 한가하게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곳도 변화의 물결을 비껴갈 수 없는지 주위가 유원지로 변해가면서 점점 퇴락해가고 그 징후를 대변하듯 정자의 편액도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한겨울 심원정은 계곡의 물소리는 요란한데 인적은 없고 공이 심은 소나무만 외롭게 정자를 지키고 있었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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