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제목은 그 작품을 지칭하는 기호이자 이름이다. 다만 작품의 제목이 사람의 이름과 다른 점이라면, 사람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누군가 지어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특성이나 성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지만 작품의 제목은 작가가 그 작품의 특성과 성격을 반영해 의도적으로 지은 것이라는 점이다. 즉 사람의 이름은 이름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에 그 사람의 특성이 만들어진 것이고, 작품의 제목은 작품의 특성이 만들어진 다음에 제목이 만들어진 것이다. 혹은 작품의 제목에 맞게 작품의 특성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작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제목이 작품의 내용이나 성격, 특성 등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작품을 분석할 때는 반드시 작품의 제목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제목은 곧 그 작품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은 작품의 인물, 소재, 주제, 구조, 양식, 사상 등 작품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하나 혹은 다수를 표현하여 그 작품을 상징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작품을 선택하게 될 연출가나 제작자, 관객 등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작가에게는 제목이 작품 전체를 요약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제목을 먼저 정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 작품 전체는 제목의 영향을 받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작품의 제목과 내용은 결코 분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의 제목을 정하게 될까? 예술가들의 감각적인 본능에 의존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인 감각 이외에 다른 원칙이 존재할까? 이런 물음에 관해 미국의 샘 스밀리(Sam Smiley)는 '희곡 창작의 실제'(이재명'이기한 편역, 평민사)라는 책에서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의 제목을 분석해 본 결과, 특정한 유형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12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것이다.
샘 스밀리가 말하는 작품 제목의 12가지 유형은 '주인공 이름, 분위기, 이미지, 주인공의 특징, 인용, 상황이나 사건, 장소, 묘사, 사물, 의미, 유머 또는 아이러니, 문학적인 언급'이다. 어떤 유형은 단번에 알 수 있는 쉬운 것도 있으나 또 어떤 유형은 꽤 긴 설명이 필요한 조금 어려운 유형도 있다. 하지만 실제 작품의 제목을 정할 때는 그가 설명한 12가지 유형보다 훨씬 많은 유형이 존재한다. 그가 말한 유형 이외에 완전히 새로운 유형이 있을 수도 있고 그가 말한 몇 가지 유형이 합쳐진 유형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작품의 제목을 정할 때 단순히 작가의 본능적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성적 논리가 개입된다는 점이다. 또한 요즘은 앞서 말한 작품적 요소 이외의 현실적 요소가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것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현대의 작품에서 제목을 결정짓는 요소로 크게 작용하는 것은 과거의 작품 제목에서처럼 진지한 깊이가 아니라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기발함 등의 상업성 혹은 대중성이다. 예를 들어 필자 또한 '오비이락'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사성어 '오비이락'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게 설정했다. 즉 주인공의 이름을 '오비'와 '이락'으로 설정해 주인공의 이름이 작품의 제목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고사성어 오비이락(烏飛梨落)에 담긴 우연과 운명이라는 본연의 의미도 사라지지 않게 작품의 주제로 담았다. 물론 한자로는 오비이락(五悲二樂)으로 변형하여 다섯 가지가 슬프고 두 가지가 기쁘다는 의미를 표현해 작품의 내용으로 드러나게 했다. 이런 유형의 제목은 앞서 샘 스밀리가 설명했던 12가지 유형 중에서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몇 가지 유형을 하나의 제목으로 합친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여러 유형을 하나의 제목으로 합친 경우에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효과 또한 커진다. 작품의 주인공과 줄거리, 주제 등을 모두 보여주면서도 관객에게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고 새로우면서도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은 기발함과 재미는 그 작품의 전반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현대에는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기발한 작품제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대에 따라 작품의 제목 또한 그 유형이 변하고 있는 셈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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