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 현오석 KDI원장

"재원없는 복지 정책은 위험…그리스 포풀리즘 타산지석 삼아야"

현오석 원장(61)은 재경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비서관, 세무대학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기조실장 등을 거친 재경부 고위 공무원출신으로 2009년부터 KDI를 이끌고 있다. 부친의 고향이 경북 문경이다.
현오석 원장(61)은 재경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비서관, 세무대학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기조실장 등을 거친 재경부 고위 공무원출신으로 2009년부터 KDI를 이끌고 있다. 부친의 고향이 경북 문경이다.

유럽발 금융위기에 이은 '이란사태'로 급등한 국제유가가 국내경기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싱크탱크이자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가 '3월 경제동향'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기둔화 추세가 완만해지고 물가상승세도 안정되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현오석 KDI원장으로부터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점검과 한미FTA 발효에 따른 논란 등의 경제현안에 대한 국책연구기관의 입장을 들었다.

현 원장은 7일 현재 106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치솟은 국제유가 상승추세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소폭 상승하겠지만 연평균으로는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크게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전망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쟁점으로 떠오른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은 무역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라며 "FTA를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논란은 발효되면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칠레 FTA때도 그렇게 반대했는데 실시하고 나니까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가장 잘 한 것은 위기극복인데 드라이브를 걸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것은 결과가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느냐"며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만 경제 성과를 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달 말 임기만료를 앞두고 40년 역사를 가진 KDI가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국제적인 위상에 걸맞는 세계적인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는 최근 한 조사에서 글로벌 싱크탱크 중에서 70위에 랭크된 바 있다.

-KDI가 내놓은 경제전망이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정확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민간부문(연구소)은 낮춰 전망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비교적 객관적인 전망을 해왔다. 2010년의 경우 KDI 경제전망이 정부보다 더 높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맞아 떨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전망치가 맞아 떨어지는 것은) 운이 좋은 측면도 있다."

-총선과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선거와 경기(상승의) 사이클이 최근에는 잘 따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재정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금년에만 전 세계에서 58개 나라에서 선거를 치른다. 그런 정치적 상황에서는 경기에 대한 기대가 많이 있는데 지금 전 세계가 '재정위기'라고 할 정도로 정부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경기사이클이 쉽게 좋아질 여지가 없다.

정말로 대외여건이 생각보다 더 나빠질 경우 재정에서 효과가 있는 그런 정책을 고려해야 되겠지만 지금 봐서는 경기사이클을 봐가면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유럽발 금융위기에 따른 영향도 다 반영되지 않은 것 아닌가

"유럽발 금융위기는 두가지 경로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무역으로, 시장을 통해 나타난다.우리가 EU(유럽연합)에 수출하는 비중이 약 15% 정도다. 이 정도는 괜찮은데 간접 경로가 있다. 우리가 중국에 많이 수출하고 중국은 EU에 많이 수출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대 EU 수출뿐 만 아니라 중국의 대 EU 수출이 나빠지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도 잘 안 될 것이다. 이번 쇼크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금융측면에서는 우리의 대 EU 금융부채가 30% 정도 되는데 증권투자에 많다. 그만큼 가변성이 많기 때문에 금융시장 쪽에서 리스크가 크다. 3월~5월에 걸쳐서 잘 주시해야 한다. 그 때 차입금 상환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란사태에 따른 유가상승도 부담이다.

"KDI는 금년 유가를 100달러 정도로 안정될 것을 전제로 했다. 이란 등의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경제 자체가 원유에 대한 수요를 확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OPEC가 감산하지 않는다면 유가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유가를 올리는 요인도 있지만 '더블딥'같이 세계경제가 더 어려운 상황이 되면 유가가 폭락할 수도 있어 연평균으로는 지난 해보다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시장 위축도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세가지 어려움이 있다.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다 가계부채를 주로 저소득층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현재 약 900 조원 정도 되는데 우리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의 100%에 육박하고 있어 부담을 주고 있다. 또 가계부채가 고정금리보다는 변동금리로 거치 없이 일시상환하는 구조로 되어있는 구조도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는 금리로 풀 수가 없고 감독을 강화해서 더이상 부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복지정책이 문제다. 재원 없는 복지는 서유럽을 답습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그리스의 한 교수와 대담을 했는데 그 나라의 여자 공무원은 애가 있으면 51살에 정년퇴직하고 90%의 연봉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렇게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하니까 지금처럼 (디폴트 상태가) 된 것이다. 그리스는 1990년도에 EU에 가입했는데 그 때는 재정이 건실했다. 그후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서 그런 제도를 도입, 포퓰리즘이 창궐한 것이다. 당시 보수적인 야당이 있었는데 야당도 표를 얻어야 하니까 동조를 했다. 그 교수가 한국도 자신들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고 조크를 했다."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인 대기업 재벌개혁 문제도 이슈가 되고 있다

"'공생발전'을 주제로 KDI도 얼마 전에 국제컨퍼런스를 했다. 효율성만 강조하다가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그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진 것 같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보완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정부도 동반성장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재벌문제는 결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외환위기때 사외이사라든가 출자총액제 제한 등 장치를 만들었지만 잘 작동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이 경쟁이다. 우리 재벌들이 국내에서는 크지만 세계에서 보면 규모가 작다.

결과에 집착해서 꽁지부터 자르려고 하는 것보다는 위에서부터 장치를 마련하고 재벌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정치권의 한·미 FTA 논란이 참여정부 때와 다른가

"우리경제는 기본적으로 무역을 통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문을 닫고 내수만 하는 경제형태는 존립하기 어렵다.

그런데 무역의 큰 질서에는 다자 간 협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각자 뛰는 것이다. 마음 맞는 나라끼리 하는데 그것이 FTA다. FTA를 둘러싼 논란들은 실제 발효되고 나면 사라질 것이다. 숫자로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야말로 의미없는 논쟁이다. 무역효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의 FTA는 적어도 참여정부 때의 한미 FTA 원안에서 출발해서 발전'보완됐기 때문에 그 보다 더 보면 더 봤지 덜 볼 수는 없다. FTA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외국기업이) 들어와서 시비건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나가서 시장을 확대한다 생각해야지 우리는 너무 수세적이다. 시장은 한번 점유하면 그걸 뺏기가 굉장히 어렵다.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시장은 전세계 시장의 테스트베드(testbed)다.미국에서 통하면 전세계에서 통한다. 밀어붙여서라도 1년이라도 더 빨리했다면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큰 도움을 줬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과의 FTA 협상도 시작됐다.

"한·중FTA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지 않다. 80년대 초반에도 FTA 추진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한중과 한일FTA도 그런 의미에서 학습효과가 있다고 본다.

중국과는 FTA를 하려면 협정을 지킬 의지가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한중FTA를 했는데 중국이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거꾸로 미국이 왜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했느냐면 우리나라가 그 정도 수준,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아직 완전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없다. 이행사항을 잘 챙겨야 한다."

-MB정부에서 추진하던 747 정책은 실패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망을 잘못한 것이지만 세계경제 상황이 급변한 것이 더 컸다.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굉장한 변화가 왔다. 과거에 해오던 방식으로 경제가 돌아갈 것으로 봤지만 그게 한꺼번에 '꽝'하고 깨진 것이다.

하나의 사이클 현상이 아닌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너무 자신감을 가져서 생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빚을 낸 것이다. 지금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자신감을 가져야 되는데 자신감을 가지려면 성장이 돼야 하고 성장이 돼야 자신감도 생긴다. 딜레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구조조정으로 끊어줘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는 그것을 정부가 해줬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부였다.

멕시코에서 G20이 열리게 되지만 국제적인 공조체제가 잘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그런 점에서 MB정부는 불운하다고 할 수 있다."

-총선과 대선 공약도 재정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공약을 내놓더라도 안 지켜도 됐다. 지금은 지키지 않을 수가 없다. 막말로 공약을 내놓고 진짜 지키지 않는 공약(空約)으로 가면 좋은데... 공약을 많이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키지 못할 공약을 지키려고 하다가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서명수기자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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