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엔 더 중요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자연에 크게 좌우됐던 농사를 잘 짓는 지혜를 자연에서 배웠다. 꼼꼼한 관찰을 통해서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관찰로 익힌 지혜는 입으로, 글로 전해졌다. 관찰 대상은 무궁무진했다. 바람도 빠질 수 없었다.
조선조 박세당(1629~1703)이 지은 색경(穡經'거두는 것에 관한 글이란 뜻으로 농서를 말함)이 그 한 실례다. 종합 농서 성격의 이 책은 많은 자연현상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농가 경험으로 예상하기'(田家占驗) 중 '바람으로 예상하기'(占風)는 바람 이야기다. '남풍은 꼬리이고 북풍은 머리이다'(남풍은 처음엔 고요히 불다가 불면 불수록 급해지고 북풍은 처음부터 세게 분다는 뜻), '춘풍은 발로 걸어다니며 소식을 전한다'(쉽게 방향을 바꾸며 멈추지 않고 분다는 의미), '남풍이 하루 불면 북풍이 도로 하루를 답례한다' 등이 그것이다. 바람의 부는 방향, 세기, 부는 시간대 등에 따라 빚어지는 현상들을 기록해 농사와 생활에 참조토록 했다.
바람은 싸움에서도 활용됐다. 신라 김유신과 고려 최영 장군이 각각 경주와 제주도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연(鳶)을 사용했는데, 이 연은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 소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선 바람이 중대 변수였다. 제갈량이 조조의 대군을 이긴 것도 바람을 이용한 화공전 덕이었다. 바람은 잘 이용하면 유용하다.
선거판에도 바람이 불곤 한다. 옛 자민련 돌풍이나 4년 전 18대 총선에서 분 친박(親朴) 바람이 그렇다. 이번 4월 총선에선 어떤 바람이 불까.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선 변화를 갈망하는 성난 민심으로 야당 지지 돌풍이 있었다. 그 바람으로 민주통합당이 출범했고, 부산경남에선 친노(親盧) 진영 총선 후보들로 짜여진 '낙동강 전선'이 형성됐다.
부산 출신의 조국 서울대 교수는 동남풍이 불 것을 기대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부산 행사에서 적벽대전을 언급하며 "동남풍은 부산에서 시작된다. 동남풍이 분다면 디빌(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말대로 되면 서울 북풍에 부산 동남풍이 화답하는 셈이다. 특히 이 바람을 탄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20대 정치 신인 손수조 새누리당 여성 후보 간 맞짱이 관심이다. 거인 골리앗과 어린 다윗의 대결 같기도 하다니 세인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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