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성익의 가슴 뛰는 세상] 유럽의 숨은 진주, 리투아니아

함께 여행을 갔던 형이 이야기해 주신 해외 교환학생 이야기. 일주일 만의 결정. 그리고 처음 알게 된 리투아니아라는 나라. 지원해서 곧바로 합격, 바로 출국! 그렇게 순식간에 저의 대학 생활 7개월 공백이 채워졌습니다. 리투아니아는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로 발트 해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나란히 위치해서 '발트3국'으로 불리는 곳이지요.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나라, 유명한 것은 농구 그리고 숲과 들판이 매력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는 2월. 영하 10℃에 달하는 한파와 함께 새로운 학기를 먼 타국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다양한 국적 문화권역의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이미 기대감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상태. 새롭게 생긴 보금자리 교환학생 기숙사. 지금 되돌아본다면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겪었지만 보낸 시간으로 보나 에피소드로 보나 역시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색적인 주방 문화였습니다.

제가 지냈던 숙소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최소 10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모여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한국의 기숙사와는 조금 다르게 숙소뿐만 아니라 공동식당이 있어서 직접 요리를 할 수 있었고 거기다 인근에는 식당이 없어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방에 오는 것이 의무 아닌 의무가 되었고 주방은 자연스레 일상 파티, 토론장, 생일 파티, 회의 등등 일상생활의 대소사를 모두 치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한국 기숙사에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요리! 재료도 풍성하고 장소도 제공되니, 하고픈 만큼 주방에 붙어서 맛이 있든 없든 다양한 요리를 열심히 만들었지요. 잘 얻어먹던 친구들이 나중에는 괘씸하게 '넌 교환학생으로 와서 공부는 안 하고 요리하러 온 것 아니냐?' 하며 잔소리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잠자는 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단 주방에 들어서면 기본 4시간씩은 꼬박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재료 손질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하고 요리가 시작되면 모든 친구들에게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만드는 법을 알려주다 보면 하나의 요리가 완성됩니다.

이어서 다른 친구들이 준비하는 요리들이 완성이 되면 여러 국적 음식들을 한 상 떡하니 차려두고 평가 및 식사가 진행됩니다. 마무리는 유럽의 상징 각종 와인, 치즈, 소시지를 후식 삼아 매일매일 주제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놀고, 먹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같이 요리를 만들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간에 문화, 음식, 개인 생각, 전공과목 등등 모든 것이 저절로 공유가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나이 지긋하신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기숙사 주방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가 머문 기숙사의 대부분 친구들의 전공은 정치외교학, 그래서 가장 자주 나온 토론 주제도 전공과 유사하게 흘러갔습니다. 유럽! 역시나 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대륙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 하면 '잘 모르거나 독특한 종교라는 인식을 가진 반면 유럽에서는 테러의 위협, 문화 갈등을 꼽는다는 점, 한국이 일본에 대한 역사적 감정이 있다면 폴란드를 포함하여 많은 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한국이 인접 국가와 역사적 견해를 두고 언쟁하듯 유럽 여기저기에서는 세계대전을 치른 이후 역사적 인물이나 영토에 대한 언쟁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 비슷하면서도 평소에는 접하지 못했던 주제들이 여기서는 자신들의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당연하게 토론 주제로 나오곤 했었지요. 덕분에 양질의 정보를 저절로 배울 수 있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최근 주목받는 '밥상머리의 기적'(밥상에서의 다양한 대화는 학습 효과를 높인다)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가서 뭐 보고 배우고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씩 웃으면서 "밥하다 왔어요"라고 말하면 돈 날리고 왔다느니, 허송세월 보냈다느니 또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해외 나가서 사랑받는 법! 친구 많이 만드는 법! 제대로 공부하는 법! 일단 요리를 시작해라, 그리고 잘 먹여라, 그럼 친구는 저절로 생긴다! 라는 것이 저의 지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밥상 차림은 저의 이색적 교환학생 생활에 초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박성익/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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