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정부의 보육료 지원은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뿐 아니라 어린이집들도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 민간 어린이집들이 집단 휴원을 결의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정부의 보육료 지원 정책을 뜯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보육료 지원 정책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을 짚어봤다.
◆나이부터 헷갈려
정부는 올해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만 5세 아동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해 준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산정한 보육료 지원 기준 나이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나이가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올해 만 5세 된 딸을 둔 박선정(37'여) 씨는 최근 주민자치센터를 찾아 보육료 지원 신청을 했다 소득수준이 하위 70%에 해당되지 않아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올해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이 누리과정 지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혼선은 정부가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육료 지원 나이를 산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보육료 지원 정책을 보면 2011년생은 만 0세, 2010년생은 만 1세, 2009년생은 만 2세, 2008년생은 만 3세, 2007년생은 만 4세, 2006년생은 만 5세로 되어 있다. 보육료 지원 나이와 실제 나이가 차이를 보이고 있어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에 따라 나이부터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형평성 논란
보육료 지원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논란은 형평성 문제다. 보육료 지원 정책을 보면 만 0~2세 영유아와 5세 아동을 둔 부모가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낼 경우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종일 보육 기준으로 만 0세의 경우 39만4천원, 만 1세는 34만7천원, 만 2세는 28만6천원, 만 5세는 20만원이 매월 지원된다. 하지만 만 3, 4세는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근로 소득에 토지'주택'금융재산'자동차 등을 합산해 환산한 소득수준이 하위 70%에 해당되면 만 3세의 경우 19만7천원, 만 4세는 17만7천원의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모든 계층에 보육료가 지급되는 만 0~2세와 5세 사이에서 만 3, 4세는 마치 섬처럼 동떨어져 있다. 이에 따라 만 3, 4세만 소득수준을 따져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의 불만이 높다.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절실함은 어느 가정보다 높지만 소득수준에 걸려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올해 만 네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직장인 최모(36'여) 씨는 "맞벌이를 하더라도 소득수준이 높지 않다. 남편과 내 월급을 합치면 4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이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보육료가 만만찮게 들지만 소득수준을 따지는 바람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의 보육료 지원 기준으로 만 3, 4세 아이를 둔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가 집단 휴원을 결의한 이면에도 형평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누리과정 도입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유치원은 어린이 1인당 정부로부터 20만원을 기본적으로 지원받는다. 여기에 종일반 지원 명목으로 1인당 5만~10만원을 추가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어린이집은 보육료 한계가 설정되어 있어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제한적이다. 특히 물가 상승 등에도 불구하고 올해 보육료가 동결됐다. 어린이집들이 유치원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보육료 지원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적절성 논란
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만 0, 1세(보육료 지원 기준) 영유아 보육료 지원 문제다. 맞벌이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이를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가정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만 3세가 지난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닌다. 만 3세가 되지 못한 아이들은 집에서 양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관례에 따르면 정부의 보육료 지원 대상에 포함된 2010년생과 2011년생은 보육료 지원 대상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보육료 지원은 올해 오히려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영유아에 대해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인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적절성 논란뿐 아니라 여러 가지 역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보육료를 지원받기 위해 너도나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다 보니 어린이집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원생 숫자를 늘리기 위해 학부모로부터 명의만 빌리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항간에는 "주는 보육료도 챙기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김모(32'여) 씨. 그녀는 어린이집에 등록은 했지만 아들을 어린이집에 늘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볼일 볼 때 잠시 어린이집에 아들을 맡겨 둔 뒤 볼일이 끝나면 아들을 데려가고 있다.
게다가 양심에 따라 혹은 사정이 있어 영유아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가정의 경우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하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영유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가정 육아를 할 경우 양육수당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만 5살이 된 딸을 키우는 김성우(35) 씨는 "애초 보육료 지원 대상이 아닌 영유아를 지원 대상에 편입시킨 것이 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가 됐다. 영유아 대신 실질적으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골고루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육료 지원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육료 지원 정책이 뒤죽박죽된 이유
전문가들은 포퓰리즘에 빠진 국회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끌려가는 정부가 만든 합작품이 '뒤죽박죽된 보육료 지원 정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보육료를 챙기려는 몰지각한 일부 부모들과 어린이집들이 가세하면서 보육료 지원 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 국회는 지난해 말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영유아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법안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올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 셈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안이 통과되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회의 포퓰리즘적 행태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올 3월부터 만 0~2세 영유아 보육료 지원 대상을 기존 소득 하위 70%에서 전체 가구로 확대한다는 방안을 실시했다. 여기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정부의 보육료 지원 정책이 일관성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지적이다.
◆지자체들도 비상
예기치 못한 보육료 지원 확대 정책이 시행되면서 지자체들은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누리과정에 드는 예산은 전액 교육 예산으로 충당이 되기 때문에 지자체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 0~2세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확대는 지자체에 예산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만 0~2세 영유아 보육료 예산은 국비 60%와 지방비 40%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혜 계층이 늘어나면서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지방비도 늘어나게 됐다.
게다가 올 예산이 정해진 상태에서 갑자기 정책이 확대 시행돼 올 예산에 보육료 증가분을 반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추경으로 늘어난 보육료 지원 예산을 마련해야 하지만 열악한 재정 여력을 감안하면 막대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근 시도지사협의회는 국고 지원 비율을 현행 60%에서 80~90%로 높여 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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