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좋다. 도전은 좋다. 희망도 좋다. 그러나 배고픔이 싫다. 현실은 힘들다.
연극판에 몸을 던진 청춘들은 삶의 긍정과 부정을 매일같이 반복한다. 하루하루 힘든 연습과정을 견뎌낼 때는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무대에 올랐을 때는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돈도 못 벌고 가난한 이 직업이 내게 맞는 걸까' 등 수도 없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이런 연극판 청춘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청춘들은 거의 없다. 어려운 가정환경이 오히려 더 많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인한 가출,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자주 이사를 해야 했던 아픔, '딴따라'라며 대놓고 반대를 하며 연극배우의 길을 막는 부모 등. 이런 속에서도 이들의 꿈은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항해 중이었다. 7일 오후
7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무대에서 꿈을 좇는 청춘들을 만났다. 한울림 극단에서 정식 단원이 된 사람들이다.
#P1. 최우정, 촉망받는 배우
"아버지는 2003년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생업 때문에 여수에서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전 꿈을 좇아 대구 연극판에서 7년째 배우 생활을 하고 있죠. 2008, 2009년 연이어 대구연극제 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단역으로라도 출연하고 싶습니다."
최우정(31'대경대 연극영화과 졸업) 씨는 한울림에서 고참급 배우다. 7년째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연기력을 키워가고 있다. 정철원 대표로부터도 촉망받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순발력도 좋고, 애드리브에도 능하다. 후배들과 소통에도 신경을 쓰며, 극단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보고 배우인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열심히 할게요."
#P2, 이도권, 욕심쟁이
"다 잘하고 싶어요. 뮤지컬도 하고 싶고, 연출도 하고 싶고, 배우로도 대성하고 싶어요. 지는 걸 싫어해서 꼭 연기로 인생의 승부를 보고 싶습니다. 부모는 반대하지만 제 자존심, 제 꿈은 소중하거든요."
이도권(26'대경대 연극영화과 졸업) 씨는 이제 극단 2년차이지만 욕심이 많다. 다 잘하고 싶다. 지난달 성공적으로 끝난 '호야 내새끼' 공연에서는 호야 아버지 역할을 잘 소화했다. "무뚝뚝하고 말 없고, 폭력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살리려 고민을 많이 했고, 그 속에 담긴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눈웃음이 매력적인 이 씨는 신데렐라의 왕자, 알라딘에서 도둑 등 아동극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로 사랑을 받기도 했다.
#P3. 정선현, 생각이 많은 배우
"딸 부잣집(4명)의 막내딸이에요. 연기가 하고 싶어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벌써 내년에 우리 나이로 서른입니다. 시집도 가야 되겠고, 생각이 많습니다. 그래도 연기에 몸을 던졌으니, 계속해서 뭔가 이뤄내려고 합니다. 잘 되겠죠?"
정선현(28'여'영남대 철학과 졸업) 씨는 대학 전공만큼 생각이 많다. 청춘에 대한 고민도, 직업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끝난 '호야 내새끼'에서 억척같은 수다쟁이 어머니 역할을 맛깔 나게 소화해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연극 '사랑을 주세요''장군슈퍼''안녕, 다온아''울돌목' 등의 연극과 뮤지컬 '마돈나의 침실로''시집가는 날' 등에 출연했다. "돈벌이 문제는 언제나 고민거리입니다. 매월 100만원 넘게 벌어야 생활이 되는데 여전히 고민입니다. 아니 150만원 정도가 좋겠습니다."
#P4. 석현오, 성우가 될래요
"5년, 10년이 지나도 꼭 성우가 될래요. 제 꿈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슈퍼스타K 오디션도 한 차례 봤고, 올해 또 도전할 계획입니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은 마음속에 꼭 품고 살죠."
석현오(26'대구과학대 방송연예과 중퇴) 씨는 성량도 풍부하고 좋아, 성우를 꿈꾸는 배우로 통한다. 현재는 연극판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결국에는 성우가 되고픈 꿈을 갖고 있다. 고생도 많이 했다.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많이 맞고 다녔으며, 고교 졸업 후에는 구미 휴대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얼큰이'(얼굴이 큰 아이)이지만 넉넉한 풍채와 좋은 성량을 갖고 있는 석 씨는 기자와 단원들에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캐릭터의 성대모사를 멋지게 선보였다. 영어 더빙, 동물의 왕국 내레이션 등도 그의 개인기에 해당한다.
#P5. 김정원, 미술전공 학도
"전 미술을 전공했지만 배우를 더 하고 싶었거든요. 지난해 7월에 극단에 들어와 제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후회되지는 않아요. 학교도 중도에 포기했는데 다시 다닐 계획은 없습니다."
김정원(26'계명대 텍스타일디자인학과 중퇴) 씨는 현재 한울림에서 아동극에 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키우고 있다. 잘 생긴 마스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타지역 공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전남 순천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했다. 포항, 안동 등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것도 언제든 환영이다. 물론 고생은 된다.
"제가 사실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안 해본 것이 없고, 나쁜 쪽(?) 일도 조금씩 손을 대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가 갈 진정한 길은 연극입니다."
#P6. 김하나, 작가 겸 배우
"제 꿈은 소중합니다. 이제 시집갈 나이도 됐지만 극작가와 배우로서의 즐거움이 더 큽니다. 둘 다 잘하고 싶어요. 벌써 두 번째 작품을 썼고, 다음 작품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예민한 성격이라 제 스스로 힘들 때도 많아요."
김하나(28'여'계명문화대 광고디자인과 졸업) 씨는 대구의 웰메이드 창작극으로 호평을 받은 '호야 내새끼'의 작가다. 김 씨는 신예작가이자 배우이다. '안녕, 다온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호야 내새끼'를 썼으며, 다음 작품도 열심히 쓰고 있다. 기자가 취재 온 이날 그는 오후 8시 대구KBS 프로그램 '담쟁이'에 출연해 스타급 대접을 받기도 했다.
"전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누구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항상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연을 찾습니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아이디어로 저장합니다. 딸의 연극판 인생을 격려해주는 어머니에게 감사해요."
#P7. 서하나, 뮤지컬 배우 되고파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여주인공 크리스틴, '미스 사이공'에 나오는 여주인공 킴,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여주인공 역할 등을 꿈꾸죠. 물론 현실에서 이런 기회가 제가 오지는 않겠지만…. 꿈은 계속 꾸죠."
서하나(26'여'영남대 성악과 졸업) 씨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배우다. 연극판에서 많이 배우면서 때론 뮤지컬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싶다. 연구하는 자세도 갖고 있다. 그래서 워크숍 공연을 비롯해 아동극 등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는 큽니다. 가족들이 저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전 성악이 아닌 배우로서의 삶을 좇아 살 겁니다."
#P8. 이지영, 무대가 좋아요
"지난달 '잘 자요 엄마' 공연을 끝마쳤는데 끝나니 그 역할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어요. 그런가 봐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힘든 것!"
이지영(31'여'경북대 국악과 졸업) 씨는 전공이 특이했다. 경주 신라국악예술단에서 피리를 불면서 4년간 활동하다 경북대 국악과 입학했고, 이후 연극배우가 되겠다면 극단에 들어왔다. 유치원 연극 때부터 무대를 즐기고, 무대에서 관객들을 웃고 울게 하는데 매력을 느껴 결국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
"10년 정도 더 연기에 파고들면 40대에 꽃필 것 같아요. 극단의 화목한 분위기도 너무 좋아요. 돈보다는 연극 그 자체가 더 좋죠. 여자이기 때문에 명품이나 외모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를 느끼는 연극을 사랑해요."
#P9. 임홍조, 10년째 배우
"연극이 참 좋아요. 아직 정식단원은 아니지만 많은 역할을 맡으며, 배우로서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임홍조(29'대구과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씨는 별명이 박신양이다. 실제 박신양을 많이 닮았다. 연극판에도 일찍 뛰어들었다. 2003년 시립극단의 '동아세탁소'에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이후에도 많은 공연을 했다. 재치나 센스가 넘치는 코믹연극에도 능하다. 지난달 '호야 내새끼' 공연에서도 이장 역할을 코믹하게 잘 소화했다. "제대로 된 배우로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어요. 꼭!"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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