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쉼표'를 찍어보자!

기사 쓰는 게 '업'이지만 글 쓰는 건 언제나 힘이 든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도 한몫한다. '뭘 주제로 잡을까, 어떻게 시작할까, 어떤 표현을 쓸까'를 생각하며 책상에 죽치고 앉아 머리를 싸맨다.

2, 3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아가며 기사를 쓰기도 한다. 맥을 끊기 싫고, 한 흐름에 기사를 완성하고 싶어서다. 혹시나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이어지던 생각이 중단되고, 쓰려고 했던 내용과 표현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에도 기사를 한 번에 완성하지 못하거나 다 쓰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고도 첫 줄조차 쓰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리 현상을 참고 참다 더는 견디지 못해 잠시 화장실 변기 위에 앉는 경우가 있다. 이때 신기하게도 몇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어도 떠오르지 않던 '마음에 드는 문장'과 '적절한 표현' '중복을 피하는 단어' '글의 얼개' '글 전개 방식 및 순서' 등이 마구 떠오르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잠시 복도로 나가 허리 한 번 펴며 머리를 식힐 때도 그렇다. 얼른 자리에 돌아와 노트북 자판을 신나게 두드린다. 물론 기사는 일필휘지(一筆揮之), 완성된 글 역시 만족스럽다.

얼마 전 한 초교 교사로부터 요즘 학생들에게 '쉼'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뽑는다는 명분 아래 시행되고 있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기간이 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학교마다 점수를 깎이지 않기 위해 '시험 모드'로 돌입하고, 학생들에게 100장이 넘는 시험지를 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달 내에 이뤄져야 해 점심시간까지 동원하지 않을 수 없고, 학생들은 밥만 먹고 시험지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 운동장에 나가 보지도 못한 채 곧바로 오후 수업 시작이다. 머리를 쉴 시간이 없다.

체육 수업도 안타깝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흙 운동장이 아닌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깔린 좋은 시설로 그 모습이 바뀌었지만 운동장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3개 학년(3개 반)이 마주칠 때면 수업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운동장이 작은 학교도 적잖다.

지난해 한 학교에선 야구 하다가 한 학생이 방망이에 맞아 다친 뒤 야구 배트 사용이 금지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글러브와 공만 가지고 야구를 하게 된 것. 물론 다친 학생에겐 유감이고 또 이러한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아예 방망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여 공에 맞아 다치는 경우라도 발생하면 글러브만 가지고 야구 하는 시늉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전문가는 '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알레한드로 레라스 교수팀은 "뇌가 지쳐서 기능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50분 공부하면 10분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했고, 직업병 치료 전문가인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의료센터의 줄리아 핸더스 칼브는 "일상적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학생들에게 규칙적인 운동을 시키면 학업 성적도 높아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진다는 네덜란드 연구진의 연구 결과도 있다. 1990년부터 30년간 진행한 연구 결과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 학생들의 성적과 행복지수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22~75% 더 높게 나타났다. 한 마디로 잘 쉬어야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쉴 때 일과 공부의 능률도 오른다.

학생들이 쉴 때 신나게 쉬고, 체육 시간엔 마음껏 운동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덧붙여 선거의 해를 맞아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국회의원, 대통령을 기대해본다.

이호준/스포츠레저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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